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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삼천리금수강산(錦繡江山·비단에 수를 놓은 듯이 아름다운 산천), 예전부터 우리 강토를 두고 이르는 말입니다. 얼마 전까지도 자주 듣던 말입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현격하게 이 말이 출현하는 빈도가 낮아졌습니다. 제 느낌대로 말씀드리자면, 남북을 아우르는 상징으로 ‘한반도기’가 등장하면서부터 이 말이 조금씩 자신의 출연 횟수를 줄여나간 것 같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애국관념(우리 것이기에 우리 강토는 아름답다)이 구체적인 상징(분단 없는 하늘색 한반도 형상)에 의해 대체되거나 압도된 현상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해외여행이 일반화되면서 나라 밖에서 아름다운 땅과 풍경을 너무 많이 보고 온 탓일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유럽의 문명적인 도회 풍경, 중국 대륙의 웅장한 산과 물, 일본이나 동남아의 풍성한 녹음(綠陰) 같은 것들이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다소나마 감가(減價)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식 뜬구름 추론입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삼천리금수강산이라는 말이 우리의 언변(言辯) 속에서 점점 찾기 어려운 말이 되고 있는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요즘, 역사소설이나 역사드라마를 보다 보면 우리가 분에 넘치는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전쟁이 무엇인지, 기아가 무엇인지, 폭정이 무엇인지를 전혀 알 수 없는 호시절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시선을 과거로 돌리면 이 땅은 도처에 상처를 지니고 있습니다. ‘무서운 땅’ 천지입니다. 가까이는 ‘80년 광주’, 조금 멀리는 ‘6.25’, 더 멀리는 일제강점, 아주 멀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우리 땅이 지금처럼 온전히 삼천리금수강산이었던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현재가 그러니 역사소설이나 역사드라마에 등장하는 민족의 고통이 살뜰하게 실감이 되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작품 속의 역사가 마치 판타지의 일부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근자에 화제가 되었던 ‘미스터션샤인’이라는 드라마가 그랬습니다. 구한말의 의병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었습니다만 실상은 외세에 대한 항쟁보다 남녀 주인공들의 매혹적인 캐릭터가 더욱 부각된 작품이었습니다. 역사(반성)가 아니라 판타지(자기도취)가 우세했습니다. 며칠 전에 40대의 한 과학도가 ‘알쓸신잡’이라는 TV프로에 나와서 한 말도 그랬습니다. 고성 DMZ박물관을 둘러본 소감의 말미였습니다. 할아버지가 함경북도 사람이고 아버지는 청진에서 나서 6.25 이후 부산에서 주로 성장한 실향민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의 북과 남에서의 삶을 상기할 때마다 “혼란을 느낀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분단 3세대인 그로서는 선대의 고통이 잘 전이되지 않는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빛바랜 역사의 한 페이지와 혈육의 고통 사이에서 개인 실존 차원의 정체성(모럴) 분열을 경험한다”로 이해했습니다.

‘현재’와 아무런 연관을 맺지 못하는 역사는 탐정극이나 판타지의 소재, 아니면 분열의 원인이 될 뿐입니다. 김훈의 소설 ‘흑산(黑山)’을 보면 정약전이 흑산도에 있던 시절 뭍에서는 부패한 관리들의 학정이 극에 달했습니다. 백성들은 고향을 버리고 굶주린 채 떠돌 수밖에 없었습니다. 권력은 울부짖는 백성들을 형틀과 매로 다스렸습니다. 백성들은 그런 ‘무서운 땅’에서 자신들을 구원할 후천개벽을 오매불망 기다렸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 흑산은 육지였다고 그는 적습니다. 그런 곳이 바로 우리 삼천리 강토였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이야말로 후천개벽이 된 새 세상입니다. 민초들이 자신의 피와 땀으로 불러낸 새 세상입니다. 그런 역사를 알든 모르든 땅 자체는 본디 무서운 것입니다. 저녁 어스름 무렵 나주 쪽에서 해남을 향하다 옆으로 스치고 지나치는 영암 월출산이나 저녁 무렵 입항하는 배 위에서 바라보는 흑산도는 무섭기 그지없습니다. ‘무서운 땅’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 시대의 역사의식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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