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헌 제5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소설 동상

김진혁14
나는 연휴가 싫다. 무섭기까지 하다. 노조에 가입해 있는 사람들에게 귀싸대기를 얻어맞을 말이지만 그렇다. 9월은 아직 사흘씩이나 남았다. 3일을 가불해서 10월 달력을 맨 앞장에 세웠다. 연휴가 빠르게 지나가는 기분이 들까 해서였다. 그러나 시간은 나노 단위도 어긋남 없이 균질하게 흘러가는데 말이다.

올해 B공단 입주 업체 대부분 추석 연휴에 열하루 동안 쉰다. 9월 마지막 금요일부터 시작된 연휴는 개천절, 추석, 대체휴일, 한글날이 패키지로 묶인 것이다. 나는 일 년간 일용직으로 계약하고 회사에 출근한 지 이제 석 달째다. 계약직 일용직도 유급 휴가란 말을 듣기는 했는데 그래도 불안했다. 열하루를 일하지 않고도 온전한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회사가 고맙고 죄송했다. 일찍이 이런 연휴는 없었던 것 같다.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다가 잠이 들었다.

기상나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누웠다. 내 모닝콜은 군대 기상 송이다. 십여 년 전, 군에 입대하는 첫 날 새벽에 다급하게 울렸던 나팔소리다. 대기병들은 벌써 군기가 팍 들어 누구 하나 늦장 부리지 않고 모두 일어났다. 나팔 소리는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전역하는 그날까지 철저하게 나를 깨웠다.

전역 첫 날 새벽, 나팔 소리를 듣지 않고도 잠에서 깼다. 방 안에 혼자 있다는 사실이 생경하게 다가왔다. 붕 뜬 기분이면서도 뭔가 뒤가 허전했다. 전역했다는 현실감이 들긴 들었다. 기상나팔 소리는 시작을 깨우는 소리다. 자기는 ‘시작이 있어 행복하다’는 교관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석 달 전만 해도 나는 ‘그 시작’이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그 시작’은 군대에서는 기상이며 사회에서는 일터로 가는 발길이다. 나는 전역한 후 ‘그 시작’을 시작하지 못하고 하루 종일 방바닥에 뒹굴었다. 교관 말대로라면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날부터 이 생각 저 생각을 굴리느라 아침에는 눈을 뜬 채 그냥 누워 있었다.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하는 수 없이 일어난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파먹다보니 하루 두 끼만 먹어도 견딜 만 했다. 그때 내 마음속에 자꾸 이래서는 안 된다는 자각하는 소리가 났다. 주방에서 간간히 들리는 그릇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시각화되어 눈에 보이기까지 했다. 형수님이 들고 있을 것 같은 무조건적인 배려의 시간은 마감되었다는 경고문을 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재수가 없는 놈은 세계 경제도 도와주지 않는다. 2008년 미국의 무슨 브러더스 사태로 세계 경제가 한 방에 날아가던 해에 육군 예비군복을 입었으니 난들 방법이 없었다. 그 놈 형제들이 멀쩡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을 쫓겨나게 만든 판국에 새로 들어갈 자리가 있을 리 없었다. 짐을 싸들고 형 집을 나오면서 냉정한 현실을 체험했다. 자빠졌는데 왜 코가 깨지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이후 기상나팔 소리가 기억에도 없는 부모님보다 더 그리웠다. 이 세상에는 기상나팔 소리가 있어야 정상적인 하루 일과가 시작되고 일을 마칠 때까지 스스로 존재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다다음주 화요일에 출근하니까 모닝콜을 꺼 놓았어야 했다. 나는 모닝콜을 끄지 않았다. ‘그 시작’이 없어지는 것 같아 두려웠기 때문이다. 내가 회사에 출근하는 이상 모닝콜을 듣는 것은 내 의무이며 권리이기도 하다. 기상나팔 소리를 들었기에 자동으로 일어나 옷을 입었다. 뭔가 불안해서 방안을 서성거렸다. 천장이 벽이 방바닥이 무너져 내릴지라도 그것과는 다른 불안감이었다. 불안감의 실체를 알았다. 그 놈의 연휴다.

나는 추석연휴에 갈 곳이 없어졌다. 처는 아들을 데리고 베트남으로 날아갔다. 그 곳에는 베트남인과 결혼한 처형이 10년 째 자리 잡고 있다. 그냥 그 곳으로 갔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되돌아 올 수도 있다. 그 때를 생각한다면 굳이 이혼을 하고 떠날 이유는 없을 것 같았는데, 나는 이혼을 당했다.

TV는 혼자서 신나서 떠들고 나는 아침 겸 점심으로 식은 밥을 데웠다. 회사에서 선물로 받은 참치로 조금은 수월하게 밥을 넘길 수 있었다. 오늘은 자유롭다가도 뭔가 했고, TV 드라마에서 울린 전화 벨 소리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빌려 온 「마션」을 몇 번 봤다. 화성 탐사 중 모래폭풍으로 실종되어 화성에 혼자 남게 된 와트니가 팀원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지구로 귀환하는 SF영화다. 휴머니즘이 그를 살렸다. 자기 위안일 수도 있지만, 영화 한 편 보고 휴머니즘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연휴 첫날의 지루함과 맞바꾸었다는 생각도 했다. 하루 종일 전파에 시달리다가 TV를 껐다. 내 방이 조용해서인지 이 건물 전체가 벙어리 같았다. 그저께 사온 이부자리를 펴고 누웠다. 베트남에 있을 아들 생각이 났다. 전처도 조금 생각해 봤다. 보기 싫은 화면처럼 기억을 다른 채널로 돌리듯 돌렸다.

한 달 전이었다. 나는 택시에 짐을 싣고 계약해 두었던 원룸으로 가는 중이었다. 택시가 우회전하자 길 건너 입주할 원룸이 보이기 시작했다. 원룸이 서서히 다가왔고 내 고개는 원룸을 따라 천천히 왼쪽으로 틀어졌다. 내릴 채비를 했다. 이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보도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보통 키에 깡마른 체구가 청재킷과 청바지를 지탱하느라 힘들어 보이기까지 했다. 택시가 그 여자 앞에 멈췄다. 피부색과 몸매로 봐서는 동남아 여인이다. 여자는 내가 내리기 전에 앞문을 열고 좌석에 날름 앉는다. 엄지로 스마트 폰 왼쪽 모서리에서 오른쪽 대각선으로 밀면서,

“아, 씨, 또 늦게 생겼네. 빨리 가요. 신도시 성서병원으로 ……요.”

생긴 건 동남아 여자인데 우리나라 말이 유창했고 태도도 당당했다. 50대로 보이는 택시기사는 그녀를 옆 눈으로 한 번 힐끗 본다. 행선지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는 오른 손으로 목덜미를 잡은 채 고개를 뒤로 젖혔다. 고개를 몇 번 앞뒤로 끄덕인 후 왼손으로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나는 거스름돈을 받기 위해 내리지 않고 기다렸다. 택시기사는 그때서야 백 원짜리 동전 두 개를 내게 건넸다. 여자는 손가락을 코에 대고 큭 하고 웃는다. 내가 뒷좌석에서 캐리어를 내리는데,

“출발 안 하세요?” 그녀가 운전기사에게 또 다그쳤다.

“조금만 더, 기다려요. 트렁크에 또, 짐이 있어요.”

“별 거지같은 게, 시간 다 잡아먹고 있네.”

나는 쾅 소리가 날 정도로 차문을 닫았다. 앞문을 열고 얼굴을 그 여자 코앞까지 들이밀며,

“뭐, 별 거지 같아? 잘 봐라. 거지같이 생겼는지.”

“백 원짜리 동전 한 개 받자고, 손바닥 받치고, 있으니까 그러지……요.”

나는 동전이 한 개가 아니고 두 개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차는 떠났다.

원룸 건물에 들어 있는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키를 받아 캐리어를 양 손에 들고 삼층으로 올라갔다. 꽤 넓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방이 네 개씩 있다. 계약하던 날 빈방이 여러 개 있었는데 이왕이면 ‘7’자가 붙은 307호실을 택했다.

나는 말만 들던 원룸에 정식으로 입주했다. 한눈에도 있을 것은 다 있다. 한 뼘 정도 넓이의 창문 밑으로 싱크대가 있고, 그 밑에 드럼 세탁기가 다소곳 앉아 있다. 싱크대 옆에는 조그마한 냉장고가 놓여 있고, 그 오른편으로 붙박이 옷장이 붙어 있다. 입구 벽에 벽걸이 TV가 떨어지지 않으려고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 어른이 섞여 눕게 되면 네 사람 정도 누울 공간이 다였다. 이곳을 방이라 해야 하나, 집이라 해야 하나, 애매했다. 방인지 거실인지도 명확하지 않고 주방의 경계도 그렇다. 이부자리를 깔게 되면 방, 손님이 오면 거실, 밥상 앞에 앉으면 식당이다. 다용도 공간이라 해야 할 것 같다. 욕실 겸 화장실은 별도로 있는데, 방 입구 오른쪽에 의뭉스럽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화장실이 있으니 집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것 같기는 하다.

이삿짐이고 뭐고 없이 짐은 캐리어 두 개다. 짐 정리를 대충 끝내고 두 다리를 쭉 폈을 때 자정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이 집으로 이사 와서 처음 욕실 겸 화장실 문을 열었다. 오래 갇혀 있던 화장실 특유 냄새에 담배연기가 섞여 있다. 한참동안 그러고 서 있었다. 화장실에는 창문이 없다. 화장실 전등 스위치를 켜면 환기팬이 자동으로 돌아가는 구조다. 냄새는 환기구를 통해 밖으로 배출되는 것 같다. 나는 변기에 앉아 킁킁거리며 냄새 출처를 살폈다. 냄새는 아래층에서 화장실 하수구를 통해 꾸역꾸역 기어 올라오는 것 같다. 구역질을 참으면서 간신히 일을 마치고 훈련소 화생방에서 뛰쳐나오듯이 나왔다.

이튿날, 일어났을 때 오전 열한 시였다. 하루 종일 있어봤는데,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고사하고 복도에 오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기척이라곤 고물 냉장고에서 나는 소리뿐이었다.

이 건물은 삼십여 가구가 살고 있는 원룸이다. 처음부터 원룸은 아니었다. 한때는 기차역이 가까워 성업 중이던 여관 건물이었다. 영업이 되지 않아 모텔로 간판을 바꾸었다. 번지수를 잘못 짚은 모텔은 원룸이 되었다. 중개사 사무실에서 들은 정보다. 실눈처럼 좁다란 유일한 창문은 여관의 유물이었다.

화장실 냄새 근원지를 알아야 하겠기에 이사 온 후 처음으로 방문을 나섰다. 문을 잠그지 않고 그냥 잤다는 것을 알았다. 이층으로 내려와 냄새의 원천으로 의심이 가는 아래층 문을 노려봤다. 그때 예닐곱 살 돼 보이는 남자애가 문을 열고 나오고 있다. 나는 몰래 엿보다가 들킨 듯 계면쩍게 웃으며 말한다.

“안녕.”

“우리 방 위층으로, 이사 온 …… 아저씨죠?”

“어떻게 알았니?”

“어제 우리 엄마와 싸웠잖아요?”

”그 여자가, 네 엄마란 말이냐?”

어제 택시에서 말다툼했던 20대 중반으로 보였던 그 여자가 이애 엄마라니 어이가 없다. 농촌의 40대 미혼남이 어린 동남아 여성과 결혼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애가 애를 낳는다는 말은 들어 봤지만 직접 보기는 처음이다. 그애는 우리말도 잘 했고 동남아 혼혈아란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나는 그애와 함께 일층으로 나란히 내려오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애를 다시 내려다 봤다. 그애는 무릎 보호대를 하고 있었으므로 단번에 지금 뭘 하러 가는지 알 수 있었다. 담배 연기 출처를 알아야 하겠기에 스쳐가는 말처럼 한 마디 했다.

“킥플립 할 줄 아니?”

그애 눈빛이 갑자기 탐조등처럼 직방으로 내 얼굴에 와 닿았다.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애는 스켑 탈 줄 아세요?라고 되물었고 나는 대답 대신 스케이트보드는 반드시 헬멧을 쓰고 타야한다고 타일렀다. 그애는 오른 손으로 겸연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친구 걸 빌려 타는 모양이구나. 했을 때, 그애는 입을 꽉 다물고 고개를 맥없이 떨어뜨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다. 너의 집에, 담배 피는, 사람 있지?”

그애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출입문 바깥으로 후다닥 나가버렸다. 출입문이 한동안 혼자서 들락날락했다. 그애를 처음 봤을 때 주눅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의 부재와 외국인 엄마가 그애를 그렇게 만든 것이라 생각했다. 헬멧을 쓰지 않고 스케이트보드를 타러 가는 그애가 불안하게 보였다. 계단을 되올라갔다.

이사한지 두 주가 되는 일요일이었다, 나는 며칠 째 그애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나흘 전 사준 스케이트보드에 대한 그애의 반응이 궁금해서였다. 그애가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슬며시 들어왔다. 머리를 감고 있던 나를 흘끔 보고는 거실인지 방인지 나도 헛갈리는 그 곳으로 들어갔다. 그애는 내가 사준 빨강 헬멧을 쓰고 있었다.

“와! 아폴로 우주선이다.”

그애는 냉장고 위에 있는 우주선 모형을 보고 탄성을 내질렀다. 우리 부부는 장난감 대여점을 운영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저렴한 장난감 대여점이 생겼다. 운영난으로 월세가 연체되면서 보증금 절반을 날리고 문을 닫았다. 우리 부부는 서로 네 탓으로 돌리다가 언제부터인가 대화의 문이 닫히면서 점점 멀어져 갔다. 어느 날 아내는 뭔가 작정을 한 듯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아들이 나를 닮아 산만하다는 말을 했다. 게다가 실업계 고교 출신 아빠를 닮아 아들 공부가 그 모양이다.라는 말에도 화가 치밀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나는 공고가 내 적성에 맞아 간 것뿐이야.”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아내는 피식 웃기까지 했다. 내게는 너무 자존심 상하는 비웃음이라 주먹이 먼저 날아 가버렸다. 아내는 부은 눈두덩이를 흉기처럼 내게 들이댔다. 이렇게 살지 않겠다며 이혼을 요구했다. 흉기를 주고 이혼을 받아가겠다는 태도가 완연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동의해야 했다. 우리는 소꿉놀이하다가 살림살이를 걷어치우듯 그렇게 간단하게 헤어졌다. 그 때 남겨둔 것이 「아폴로 우주선 모형」이다. 나는 그애가 단박에 아폴로 우주선 모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에 조금 놀랐다.

나는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고 로션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거실로 갔다. 그애는 우주선 모형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17호를 언제 발사한지 아세요?”

나는 기가 죽었다. 지금 갖고 있는 모형은 11호이기 때문이다. 나는 발사 날짜를 몰랐다.

“아빠, 일천구백 칠십 이 년 십이 월 십일 일이에요.”

나는 흠칫하며 놀랐다. 1972년 12월 11일이라 말보다는 ‘아빠’란 소리 때문이다. 티브이를 쳐다봤지만 꺼져 있다. 아빠란 소리를 잘못 들은 것일까? 등골이 서늘했다. 그애 목소리였다. 말을 튼 지 불과 두 주 만에 그애가 나를 ‘아빠’라고 불렀다. 나는 그애 헬멧을 벗기며,

“내가, 스케이트보드를 사줘서, 아니면, 실수로 그렇게 부른 거냐?”

그애는 우주선 모형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한다.

“아빠를, 아저씨 이름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내 이름은 백성민이야. 외우기 좋은 이름이지?”

그애는 백성민 씨하고 부를 수는 없다고 어른스럽게 사양했다. 아저씨란 말은 꾸지고 그래서 아빠라 부른다는 것이다. 그애는 아빠를 일반적인 호칭으로 불렀지만 듣게 된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아무나 아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아빠도, 자격이 있어야 한다. 자격이 없으면서도, 아빠가 되었다간, 나처럼 되고, 너처럼 된다.” ‘너나 나나 좋은 부모님을 만났더라면 이런 집에서 살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처음으로 부모님에게 저주는 아니더라도 노골적으로 섭섭한 마음을 드러내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넌, 고향이 어디니?”

“고향이 뭐예요?”

“추석 때나, 설 때 가는 곳.”

“아무데도, 안 가는데요.”

나는 그애 엄마가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애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아 묻는 것을 생략했다. 나는 그애 엄마가 동남아 국적의 외국인이란 내 추측이 맞는다는 생각에 어느 나라인지 궁금했다. 베트남이라면 전처와 아들이 지금 그곳에 살기 때문이다. 나는 의도적으로 물었다.

“베트남에 가 본적이 있니?”

그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은 조동하였다. 일곱 살이다. 그애의 손을 만져보고 싶어 동하 손톱과 발톱을 깎아줬다. 아빠라 불러줘서 고마워. 어릴 적 내 꿈은 헬리콥터 조종사였다고 말하고 동하의 꿈을 물었다. 스케이트보딩 달인이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듯한 현란한 묘기가 그애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같다. 우연히 그애와 내가 하늘을 날고 싶다는 취미가 같아 기분이 묘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꼭 헬멧을 쓰고 지정된 장소에서 타야 된다고 아들에게 했던 말을 동하에게 그대로 했다.

“친구가 그러는데요. 내 실력이 많이 늘었대요.”

“실력이 늘었다니, 아빠도, 기분 좋구나.”

“다녀오겠습니다, 아빠.”

오늘 ‘아빠’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다시 아빠란 자격증을 되찾은 듯 기분이 묘했다. 그애는 스케이트보드를 타러 갔다. 자랑하고 싶어 들렸던 모양이다.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탑이 있었는데, 다른 집 옥탑과 다르게 원형이었다. 그 위에 LTE 중계 안테나가 뻘줌하게 서 있다. 나무 사다리가 있어 옥탑 처마에 붙이고 조심스럽게 올랐다. 그곳은 생각보다 넓었다. 옥탑에서 내려다봤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하게 높았다. 이런 데서 뛰어내려 죽는 사람들이 있다니, 뛰어 내리는 흉내를 내봤다. 오금이 저려왔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사방을 둘러봤다. 건물마다 옥상에는 ‘?’자 형으로 생긴 안테나가 꽂혀 있다. 더러 스카이 접시 안테나도 있는데, 꼿꼿한 몸체로 하염없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옥상마다 빨래 건조대에 옷가지들이 걸려 있다. 내가 서 있는 옥상에는 그런 것들이 없다. 인류의 손길이 닿지 않은 위성 표면 같았다.

연휴 네 번 째 날이었다. 나는 동하가 올 때쯤 실눈 같은 창문으로 계속 밖을 살폈다. 점심시간쯤이면 오던 동하가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느닷없이 방문이 열리고 동남아 여자가 동하 왼쪽 팔을 움켜잡고 스케이트보드 가방을 든 채 서 있다.

“이 보세요. 남의 집 자식, 죽일 일 있어요?”

동하는 살살 웃으며 명치 부근에 오른 손을 대고 흔들고 있다. 괜찮으니 걱정 말라는 품새다. 나는 웃음을 지그시 물고 아무 말 않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돈이 그리 많아요? 백 원짜리 동전 하나도, 아까워했던 사람이??. 의외네요.”

“엄마, 아빠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어디다가 아빠라 그래, 이 새/재끼야.”

“엄마도 나이 많은 여자를 보면 ‘엄마’라 부르면서…….”

“애를 꼬여서 뭘 어떻데 해보려는 모양인데, 일 없네요.”

“??.”

그녀는 콧방귀를 한 방 끼고 들고 있던 스케이트보드를 방바닥에 내팽개쳤다. 동하를 꼬나보며 “빨리 내려와, 이 새/재끼야.” 어떻게 들으면 ‘이 새끼’, 달리 들으면 ‘이 재끼’로 들렸다. 그녀는 문을 쾅 닫고 가버렸다. 나는 그때까지 동남아 출신이 어쩌면 저렇게 우리나라 말을 유창하게 하는가에 감탄하고 있었다. 동하는 쪼르르 달려가 스케이트보드 가방을 열어 보고는 아쉬운 듯 오른 손을 힘없이 흔들고 나갔다.

이틀 동안 동하를 볼 수 없었다. 문득 아들 생각이 났다. 아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카톡 배경 사진을 본다. 아들이 여섯 살 때 처음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모습이다. 동하 얼굴과 겹쳐진다. 가슴이 맥맥하다.

추석 전 날이라 마트에는 손님들이 많았다. 나는 고등어 통조림 세 개와 동하가 좋아하는 허니버터칩과 홈런볼을 카트에 넣었다. 소주를 사기 위해 코너를 돌 때,

“엄마, 아빠다아.”

오른 쪽 스낵 코너에서 동하가 쫓아오며 나를 그렇게 부르다가 미끄러졌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눈길이 일제히 동하에게 쏠렸다. 우리 세 사람을 번갈아 쳐다본다. 이혼한 부부가 우연히 마트에서 만나게 된 상황으로 짐작하고 바라보는 것 같다. 어쩌면 내가 동남아 아내를 버린 것으로 오해할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카트를 잡고 있던 동하 엄마는 멀뚱히 바라보고만 서 있다가 나와 눈길이 맞닿자 홱 돌아섰다. 동하는 일어나 내 다리를 두 팔로 안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빠, 우리 엄마 알죠?”

어제 자신의 엄마를 만나 싫은 소리까지 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동하다. 이번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세 사람을 번갈아 보고 있다.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어 관객들은 다큐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동하 엄마는 슬며시 계산대를 재빠르게 빠져나갔다.

동하 엄마가 내 방문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동하가 손잡고 오는 모습을 부러 외면했다. 우리 앞을 막고, 아무래도 안 되겠다며 스케이트보드를 없애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마나 나는 동하 머리를 계속 쓰다듬고 있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 퍽 문질러 앉는다. 장바닥에서 행악하는 노파처럼 보였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며,

“동하 스케이트보드 어딨어요?”

“우선 들어갑시다.”

“혼자 사/자는 남자 방엘 왜 들어가자는 거예요?”

‘혼자 사는 남자’인지 ‘혼자 자는 남자’인지 그녀의 발음에 또 헛갈렸다. 동하가 그녀를 방으로 밀어 넣었다. 세 사람이 들어서자 방은 오랜만에 그득했다. 동하가 그녀를 억지로 앉혔다. 동하는 내 등 뒤에서 내 양 어깨를 거치대처럼 짚고 말한다.

“엄마가 타지 말라고 하면, 안 탈 테니, 아빠하고 놀지 말라는 소리는 하지 말기야.”

그녀는 우리의 꼬락서니를 보고 어이없다는 듯 아들을 노려보며,

“아빠란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구나. 이 새/재끼야, 누가 아빠야?”

“스케이트보드는, 헬멧과 보호 장비를 갖추고, 안전한 장소에서 타면, 문제없습니다.”

“누가 그걸 몰라서 그래요. 아이를 안 키워보신 모양인데, 아이들은 죽어라 말 안 들어요. 난, 하나뿐인 아들이, 어떻게 될까, 늘 조마조마하거든요.”

“동하는, 그동안 친구 걸, 사정사정해서 빌려서 탔어요. 그 모습이 얼마나, 비굴한지 동하 엄마가 직접 봤으면, 가슴 아팠을 걸요.”

“치사하게, 사정까지 하면서 타니?”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동하는 눈물을 찔끔거리며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녀도 뒤따라 나간 뒤 또 이틀 동안 동하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나는 방바닥에 귀를 댔다. 아래층에서 인기척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사람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처음 있는 일이다. 포교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쨌든 반가웠다.

“문 열려 있어요.” 문을 열고 얼굴을 들이민 사람은 뜻밖에도 동하 엄마다. 동하가 밥도 안 먹고 학교에도 안 가겠다고 버틴다고 했다. 엄마 말이면 두 말 않고 듣던 동하를 내가 완전히 버려 놓았다고 말하면서 나보고 책임지라고 한다.

“들어 와, 앉기나 하세요.”

오늘은 그녀가 혼자 사/자는 남자 방에 거침없이 들어섰다. 그 모습에 조금 웃음이 삐져나왔다. 나는 싱크대 옆으로 조금 비켜섰다.

“웃음이 나오세요. 지금 빈정대는 거예요?”

지금 이 상황에 웃음이 나오게 생겼느냐고 따지듯 대들 자세였다.

“외국인 치고는 말을 잘하시네요?”

“그 놈의 외국인, 난, 베트남에서 태어났지만, 지금은 십 년째 어엿한 한국인이란 말예요. 외국인, 외국인 하지 마세요.”

베트남이란 말소리에 불현 듯 전 처와 아들 모습이 떠올랐는데, 그녀가 양 귀를 막고 방방 뛰는 바람에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허둥댔다.

“왜, 왜 그러세요?”

그녀는 당당하게 한국인이라 선언한 다음 씩씩 거리며 금방이라도 되는대로 뭐든 내던질 듯 두리번거렸다. 어디를 잡아야 할지 쩔쩔 매면서 그녀 등 뒤에서 두 팔로 껴안았다.

“이 거 안 놔.”

나는 얼른 손을 풀고 비켜섰다. 이마에서 진땀이 삐져나왔다. 그녀는 방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아이처럼 울고 싶었을 것이다.

“미안합니다. 저는 외국인치고는 우리말을 잘하는 구나 감탄하고 있었는데. 제기랄!”

그녀는 내가 조금 거칠게 나오자 수그러졌다.

“난, 너무 억울해요. 어린 나이에 한국으로 시집왔는데 베트남에 살 때보다 더 힘들었어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농사일을 했는데……, 남편이란 놈은 술만 마시면 일할 줄 모른다고 사람을 마구 때렸어요.”

그녀가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아 잠시 뭔가 했다. 동기는 달랐지만 나도 그랬다. 한 번 주먹이 나가고부터 두 번째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아내와 헤어지게 된 간접적인 동인이기도 했지만 모욕은 폭력을 이겼다. 품위 없는 말도 힘을 이겼다. 아내는 우리 사이에 부부란 정의가 조금은 남아 있었는데 마주 쏟아가란 태도였다. 내가 무릎을 꿇고 사과하지 않은 것이 그녀는 자신이 바라는 것이었다며 쾌재를 부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동하 엄마는 말을 끝내고 한참동안 침묵을 지키며, 지난 기억에 진저리가 나는지 몸을 떨었다. 그녀는 여성단체의 지원을 받아 이혼에 성공했다고 했다. 이혼이 성공한 업무에 포함된 시대가 되었다. 우리의 이혼은 누가 성공했으며 어느 쪽이 실패했단 말인가? 대부분 여성 쪽이 성공하는 것 같다. 결혼이란 유서 깊은 고전적 가치가 겁탈당한 거와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이혼율은?OECD?국가?중?9위,?아시아에서는?1위다. 이혼?자체보다?이혼에?따른?위자료와?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육비?등 금전?문제로 더 시달리게 되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그녀는 짝 들어붙은 청바지에 다리를 비스듬히 포갠 채 앉아 있었다. 불편했는지 양 다리를 고추 세우고 무릎을 양 손가락으로 깍지를 낀다. 냉장고 위에 있는 아폴로 우주선 모형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다.

“불편하시면 다리를 그냥 쭉 뻗으세요.”

그녀는 그간의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동하가 엄마 돈을 몰래 빼돌린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낌새가 이상해 동하를 족쳤는데, 내가 사주었다는 자백을 받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그날 올라와서 따졌다고 조근 조근 이야기했다. 상조회사에서 일당을 받고 일하면서 담배를 배웠다고 했다. 그녀는 담배를 되도록 바깥에서 피겠다고 먼저 얘기했다. 그녀 태도가 우호적으로 바뀌는 것 같다.

“손님이 왔는데 물이라도 한 컵 내놓아야지요.”

하며, 주객이 바뀐 듯 그녀가 일어나 커피포트에 있던 물을 버리고 새로 받아 전원을 누른다. 커피 잔에 믹서 커피를 쏟은 다음 물을 부었다.

“받침대가 없네요.”

“없어요. 있을 필요가 없지요.”

커피를 다 마시고 났을 때, 우리는 서둘러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는 분위기에서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우리는 동시에 어떤 말을 하려했다. 첫마디에서 충돌하고 말았다. 함께 웃었다. 그녀가 먼저 말했다.

“가족은 있으세요?”

“헤어졌습니다.”

그녀는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뭔가 공감하겠다는 표정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고, 안타까운 표정을 그리며 일어났다. 나도 따라 일어났다. 그때 방바닥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나는 그녀가 흘린 물방울을 밟지 않았다. 우리 관계를 재조정해야하는 시점에 와있다는 감성이 내 마음 속에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국가 간 교환 학생이 있다고 했는데, 이제 가족 교환도 성사되는 시대에 살고 있구나 싶었다. 그녀가 방문을 열고 문을 닫기 전에 우리는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암묵적이긴 하지만 가슴이 따뜻해 질 것 같은 약속을 눈빛으로 교환하고 있었다.

이튿날, 동하가 스케이트보드가 담긴 가방을 들고 헐떡이며 들어왔다. 아마에 땀이 배어있다. 화장실로 들어갔다가 일을 마치고 나가려 할 때,

“우리 오늘 밤, 옥탑에 텐트치고 함께 잘까?”

“「아빠, 어디가」처럼? …… 지금 올라 가 볼래요.”

같이 올라갔다. 동하는 옥탑을 쳐다보며,

“와! 우주선이다, 우주선.”

동하는 LTE 중계 안테나가 거치된 옥탑이 우주선 발사대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애 머릿속에는 중계 안테나가 지금 우주센터와 교신하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우주선이 어떻게 발사되는지를 동하에게 물었다. 그애는 거치대가 제거되고 고체 연료가 점화되는 동시에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고 했다. 작동 순서를 시퀀스라 하고 중계탑이 우주선이라 한다면 옥탑은 우주선의 노즐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보통 아이가 아니구나! 오바마 대통령도 애플의 잡스도 혼혈이잖아. 너도 그렇게 될 수 있어.’ 그애를 다시 한 번 쳐다보게 되었다. ‘아들에게도 혼혈 동생이 생길지도…….’ 기분이 씁쓸했다. 우리는 그애가 말한 거친 콘크리트 우주선의 추진 엔진 노즐을 쓰다듬었다.

“넌, 왜 우주선을 좋아하니?”

“엄마가 장난감 회사에 다녔어요.”

“그랬구나. 난 우주선 발사원리 때문에 취직한 사람이야. 요즘 취직이 얼마나 어려운지 네 엄마한테 물어보면 잘 알 거다. 보통 똑똑하지 않고는 취직 못해.”

“우주선 만드는 회사에 다니세요?”

“아냐, 아냐, 내가 어떻게 그런 회사를, 고졸인데. 아빠는 공업용 분무기 만드는 회사에 다녀. 면접시험에 떨어진 줄 알았는데…….”

나는 내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극적인 이야기를 데리고 산다. 그 이야기를 끄집어 낼 때는 먼저 나부터 감동해서 물 한 모금을 마신 후 내 감성을 식혀야 할 정도다. 나는 조그마한 고물 냉장고에서 물통을 끄집어내어 찬물을 한 잔 쭉 들이켰다.

그날 취업 면접 도중이었는데 이마가 훤하게 벗겨진 사람이 들어왔다. 그 때 내가 우주선 발사 원리와 분무기 분출도 비슷한 원리라 말했다. 그때 면접관이 알았다며 다음 면전할 사람을 불렀다. 그때 머리가 좀 그런 사람이 “잠깐”하면서 나보고 마저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 분무기에서 물을 분출시킬 때 생기는 분출 단면적을 좁게 하면, 압력에너지가 속도에너지로 바뀌어 멀리까지 분출되는 원리와 우주선 발사 원리가 같다고 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 사람은 우리 회사 대표였다. 대표는 자신의 사업에 처음으로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는 듯했고 장차 우주선을 개발하겠다는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나는 우주선 발사 원리로 취업에 성공했다.

그날 밤, 우리는 옥탑에 올랐다. 텐트를 치려고 했지만 바람이 세찼고 끈을 묶어 고정시킬 데가 없었다. 우리는 옥탑에 퍼질러 앉아 마주보며 노래 불렀다. 동하는 ?꽃밭에서?를 불렀고 나는 따라 불러주었다. 곳곳에 수많은 빨간색 십자가들이 우리가 몸을 흔들 때마다 일렁이며 우리의 밤을 찬양하고 있었다.

“아빠.”

옥탑에서 듣게 된 동하의 아빠란 호칭은 그동안 들었던 소리와 다르게 들렸다. 건성이 아닌 진성으로 들렸다. 나는 아버지처럼 동하를 꼭 껴안아 주었다. 동하도 내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옥탑을 내려왔다. 동하는 베개를 갖고 와 나와 함께 잤다.

나는 기상나팔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동하 엄마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흠칫하며 옆에 자고 있는 동하를 깨웠다. 밥상에는 세 개의 수저가 놓여 있다. 동하는 엄마를 보고 깜짝 놀란다. 일어나 곧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이렇게, 밥상을 차려 본 지가, 얼마만인지 몰라요. 새삼 엄마가 된 것 같네요.”

그녀는 감격스러운지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의 마지막 말을 풀이하면 새삼 아내가 된 것 같네요.로 확대 해석할 수도 있다. 내게 밥이 아닌 다른 것으로도 허기를 채워줄 것 같았다.

“미안해요. 동하가, 여기서 잔다고, 엄마한테 이야기한 줄, 알았어요.”

“그게 아니라, 이혼에 성공하고 어느 남자를 만나 동하를 임신했어요. 동하를 옥탑 방에서 혼자서, 낳았어요.”

그녀는 오늘도 성공한 이혼을 먼저 말했다. 그런 다음 하고 싶은 말을 이었다. 성공한 이혼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 한국인을 자신의 자궁에서 성공적으로 착상시켜 이 땅에 기여한 엄마로서 당연한 자존감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출산 중에 정신이 혼미했는데, 누군가 죽으면 안 된다는 듯 발악하는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끈에 매달린 생명체-내 생각에는 우주 유영을 하는 동하-가 울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 눈동자에 핏빛 눈물이 고여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음보를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그녀는 어쨌거나 이국에서 두 번 씩이나 성공을 만끽한 여성이 되었다. 한번은 이혼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아들이 한국인의 성을 얻었다는 업적이다. 성을 물러준 남자는 그녀에게 뜻하지 않았던 성공담-조그마한 흠결은 있는-을 위자료처럼 안겨주고 사라졌다. 한국인 셋은 한 가족처럼 둘러 앉아 밥을 먹었다.

추석 연휴 마지막 일요일이었다. 자고 나면 남은 연휴가 아직도 24시간 남아 있어야 하는데 갑자기 24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아쉬웠다. 처음으로 연휴가 좋기는 좋은 거구나 했다. 저녁 8시가 지났지만 아직 바깥은 어스름했다. 그녀 옷차림이 바뀌었다. 회색 바탕에 흰 줄과 푸른 줄이 교차하는 스커트와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우리는 옥탑으로 오르기 위해 내가 사다리 밑을 잡고 동하가 척후병처럼 먼저 올라갔다. 뒤이어 그녀가 치마 뒤를 움켜잡고 아슬아슬하게 올라갔다. 내가 올라갔을 때, 그녀는 발레를 하듯 양팔을 펴고 빙그르 돌다가 내 손에 잡혔다. 하늘을 쳐다보며 연극 대사처럼 말한다.

“저렇게 많은 별을, 보는 것은, 처음이야! 은하수는, 어디 있어요?”

“은하수는 일급수라서, 도시에서는 잘 안 보여요. 불빛이 없는, 산골짜기 같은 데서, 여름에 잘 보여요.”

“마지막 수업에선가, 별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녀는 소녀시절로 되돌아간 듯 들떠 있다. 동하를 우리 가운데 앉혔지만 일어나 내 오른쪽에 앉으며 말한다.

“엄마, 아빠, 나 예쁜 여동생 하나, 있으면 좋겠다.”

나와 그녀는 동시에 서로 바라봤다. 달빛에 어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정지화면처럼 한참동안 그러고 있었다. 우리는 한참 만에 고개를 돌렸다. 나는 왼팔로 그녀를, 오른팔로 동하를 감싸 안았다. 그녀를 안고 있는 왼쪽 손등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나는 하늘을 쳐다봤다. 비는 내리지 않았다. 별빛이 명멸하던 알프스 산자락에서 바라 본 하늘에 둥근 달이 떠 있었다. 연휴를 가족과 함께 보낸 것 같아 행복한 감정이 어른거렸지만 뭔가 또 불안했다. 필사적으로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내가 말했다. 재혼하자는 말보다는 우리 처지에 어울리게,

“우리, 지나간 시간을 재활용합시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데 옥상에서 쾅 하는 굉음이 들렸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나만 놀란 것이 아니었다. 사다리가 미끄러지며 옥상과 부딪히는 소리였다. 우주선은 거치대를 제거하고 몇 단계를 거쳐 시퀀스가 작동되면 발사된다. 동하의 옥탑 우주선은 거치대를 뿌리치고 하늘로 힘차게 솟았다. 동하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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