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14세기에 유행해 무려 2억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흑사병이 그로부터 훨씬 전에도 인구가 많았던 유라시아 지역에서 출현했음을 추정하게 하는 단서가 발견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코펜하겐대학 연구팀이 스웨덴 서부 곡헴 지역에서 발굴한 5천년 전 유해인 20대 여성의 치아에서 유전자 분석을 통해 지금까지 발견된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흑사병 원인균을 확인했다고 7일 보도했다.

연구팀은 이 여성과 함께 발굴한 77구의 유해 가운데 다른 한 구에서도 같은 병원균의 흔적을 찾아냈다.

모든 흑사병은 페스트균(Yersinia pestis)으로 발병하는데 곡헴에 5천년 동안 묻혀 있던 여성은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림프절 페스트보다 한층 치명적인 폐페스트균의 유전적 특질을 갖고 있었다.

이번 연구를 이끈 코펜하겐대학의 시몬 라스무센 교수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한 흑사병 원인균의 가장 초기 형태”라고 말했다.

라스무센 교수는 지금의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몰도바 등 유라시아 지역에서 약 6천 년 전부터 형성된 ‘대정착지’(Mega-settlements)에서 사람의 질병으로 나타난 것이 최초의 흑사병으로 보고 있다. 대정착지에는 당시 수만 명이 거주했는데, 많은 사람이 동물과 함께 지내는 비위생적인 생활환경은 다양한 해충의 온상이 됐고 이것이 새로운 병원균이 생긴 배경이라는 것이다.

코펜하겐대학 연구팀이 과학저널 ‘셀’을 통해 제시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이렇게 유라시아의 대정착지에 처음 출현한 흑사병은 약 5천700년 전에 새롭게 발명된 마차를 매개로 교역로를 따라 유럽 먼 곳의 농촌 마을까지 광범위하게 퍼졌다.

이 시나리오는 5천500년 전에 유라시아의 대정착지들이 갑자기 폐허로 변하면서 ‘신석기시대 인구감소’(neolithic decline) 현상이 나타났는지를 설명해 주는 단서로 간주되고 있다.

라스무센 교수는 “대정착지는 흑사병균이 퍼지는 것과 동시에 붕괴하기 시작한다”며 당시 흑사병으로 유라시아 지역의 인구가 급격히 줄고 동쪽에서 유럽 쪽으로의 인구 이동이 이뤄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일로 초기 유럽인들의 유전자 구성이 완전히 바뀌어 오늘날의 유럽인이 있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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