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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경북을 건다] 20. 경산 갓바위 가는 길
[길, 경북을 건다] 20. 경산 갓바위 가는 길
  • 윤석홍 시인·도보여행가
  • 승인 2018년 12월 23일 21시 33분
  • 지면게재일 2018년 12월 24일 월요일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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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닿아 있는 너른 갓 이로 간절한 중생들의 소망 가득
관봉 석조여래좌상
경북의 영산으로 꼽히는 팔공산(1193m). 해발 고도는 그리 높지 않지만 대구를 비롯해 영천·경산·군위·칠곡 등 경북 내륙의 5개 시·군을 아우르는 우람한 산이다. 통일신라 때는 동쪽 토함산, 서쪽 계룡산, 남쪽 지리산, 북쪽 태백산 중심에 있다고 중악(中岳)으로 불리기도 했다. 팔공산 주변에는 크고 작은 절집이나 굿당들이 즐비하다. 특히 동쪽 끝자락 해발 850m 관봉 정상에 앉은 ‘관봉석조여래좌상’이 영험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불상이 갓 모양의 너른 판석을 이고 있어 흔히 ‘갓바위’로 불리는 이 불상은 현세의 구복을 비는 약사신앙의 명소이다. 이 불상은 신라 선덕여왕 때 만들어졌다고 전해지지만 조성연대나 목적은 명확하지 않다. 소원성취와 관련한 설화나 구전 하나쯤 있을 법한데도 전해지는 것이 없다. 갓바위 불상 존재가 알려진 것은 1960년대 초 어느 일간신문 기사에 의해 알려진, 천 년 넘게 지내다 잠을 깬 지 이제 60년도 채 안 된 셈이다. 이 불상의 영험함은 실제나 전설로도 증명된 바 없지만 수능 시험 때나 연말연시 특히 새해가 시작되는 1월이면 간절한 소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든다. 무엇이든 ‘보아야 믿는’ 불신의 시대에 사람들은 왜 소원성취했다는 구전 하나 없는 갓바위의 영험함에 기대는 것일까. 그건 소원을 이뤄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보다는, 그저 소원을 말할 수 있는 대상으로의 역할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묵은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이해야 하는 시기에 잠시 지나온 삶을 조용히 되돌아보며 다시 주어지는 365일이라는 정갈한 시간 앞에서 결의와 소망 하나쯤 다져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첫 마음’을 내기는 쉬워도, 이를 끝까지 가져가는 일은 어렵다. 그렇다면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에 비는 소원이란, 스스로의 의지를 묻는 시간 앞에서 첫 마음을 끝까지 가져갈 수 있기를 바라는 일에 다름이 아닌 것 같다.
관봉 석조여래좌상
새해 소원 하나 깊이 품고 팔공산 자락에 있는 영험하기로 소문난 ‘관봉석조여래좌상’을 만나기 위해 경산 시내에서 선본사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는 사람들로 가득하지만 불평 한마디, 눈살 찌푸리는 사람이 없다. 아마 갓바위를 가는 이들은 모두 기도하는 마음이고 서로의 마음이 담긴 염원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배려하고 있다는 것 아닐까 싶다.

이른 아침 선본사에서 갓바위가 있는 관봉으로 오르는 산길은 흰 입김을 내쉬며 묵은해를 보내고 다가올 새해 소망을 빌러 오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가파른 계단을 두 세 걸음마다 한 번씩 쉬면서, 때 묻은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으면서도 오르기를 포기하지 않는 촌로(村老)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이 품은 소망과 기원이 그만큼 깊은 것 아닐까 싶다.

연말연시를 맞아 몰려든 기도객은 줄을 서듯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풀어내며 사람들은 돌계단을 오른다. 양초 몇 개와 공양할 쌀이 담긴 작은 배낭을 멘 촌로들은 이마에 땀을 닦아내며 자주 난간에 기대어 쉰다. 무릎을 절룩이면서, 굽은 허리를 두드려가면서 묵묵히 관봉을 향해 오른다. 돌계단과 철 난간으로 이뤄진 길은 구불구불 끝이 없다.
점심 공양
공양간이 있는 곳에서 잠시 숨을 돌린 뒤 무와 고추 장아찌를 잘게 다진 찬에 밥 그리고 맑은 된장국으로 원기를 보충한다. 다시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대웅전이다. 이곳에서 한 번 더 숨을 고른 뒤 더 오르면 갓바위 부처가 있는 관봉 정상 ‘산정법당’이다. 초입의 가파른 시멘트와 840여 개 넘는 돌계단을 오르니 갓바위 부처께서 말없이 맞아주며 “너는 또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느냐”고 물으시는 것 같았다.

우뚝 솟은 암봉에 정좌한 높이 5.6m의 거대한 석불 앞에는 향불이 피어오르고, 그야말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약사여래불’을 외는 독경 소리에 맞춰 촘촘히 매달린 소원 등 아래는 방석을 펴놓고 108배를 올리는 기도객으로 빼곡하다.
동전을 붙이고 기도하는 사람들.
석불이 올라앉은 바위에는 소원을 외며 동전을 붙이는 소망의 손들로 가득하다. 한 촌부는 찬 바닥에 몸을 낮추고 땅에 머리를 대고 일어설 줄 몰랐다. 무엇이 그리도 간절한지 방석 위로 눈물이 툭툭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새해 첫날 관봉 갓바위에 올라/찬바람에도 끄떡없이 좌정한/석조여래 좌상을 향해 머리 숙여/간절히 올리는 기도의 흔적이/땀과 눈물로 흘러내렸습니다



햇살 거둔 그늘엔 등 굽은 노모의/눈썹 같은 쌀꽃이 매달려 떨고 있고/들숨과 날숨이 허공에서 춤을 추지만/공양간에 기도 차 들른 성에도/반짝이는 사리로 피어났습니다



늙은 보살이 담아준 하얀 쌀밥은/나락에서 다시 밥알로 태어나/시래기 몇 점 든 시큼한 된장국/짜디짠 무 몇 조각을 복스럽게/먹는 모습이 생불(生佛)처럼 보였습니다



촘촘하게 매달린 소원등 사이로/무거운 짐 부리듯 소망을 내려놓고/산정 법당에 엎드려 비는 생불들/꿈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거나/꿈이 되어 땅으로 내려옵니다

‘갓바위 부처’ 전문

기도하는 참배객
너무 간절해 보여서였을까. 갓바위 부처 앞에 머리 숙인 사람들에게서는 사실 희망에 대한 기대보다는, 삶에 지친 표정들이 먼저 읽혔다. 자신의 희망은 누군가 이뤄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성취해 나가야 하는 것임을 저들은 왜 모를까. 그럼에도 이렇게 무거운 짐을 부리듯 소망을 내려놓고는 찬바람 속에서 두 손을 모아 간절하게 기원하는 까닭은, 그 소망의 대상이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 대개가 가족을 위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소망성취 느린 우체통
가족들의 건강, 자녀의 취업, 사업 번창 등 모은 손이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그 소망은 작거나 소박한 것이 틀림이 없다. ‘로또 복권 당첨’ 따위의 허황한 소망이 저리도 간절할 턱이 없기 때문이다. 하루에 3000에서 5000명, 연말연시나 입시 철에는 몇만 명이 찾아와 지폐 몇 장을 불전함에 넣고 몇 배의 원가가 드는 소원을 빌고 있으니 그 소원 다 들어주시려면 무척 힘드실 것 같다.

대자대비 부처님이 아니라면 짜증이라도 내시련만 오늘도 갓바위 부처님은 온화한 미소로 중생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계시는 것 같다. 부처님의 공덕이든 하나님의 은혜이든, 세상의 모든 소원이 봄날의 꽃잎처럼 피어올랐으면 좋겠다.
돌에 붙어있는 동전
갓바위 부처 오른쪽 아래 바위 벽에 동전을 조심스레 붙이는 사람들이 보인다. ‘붙인다’기 보다는 ‘얹는다’가 더 정확한 표현일 듯싶다. 떨어지지 않아야 소원이 이뤄진다는 속설이 있다고 하니 말이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기도를 올리라고 적힌 현수막이 보이고 잠시 난간에 기대어 사방을 둘러 본다. 희미한 실루엣으로 물결치는 산야, 보석처럼 반짝이는 도시의 풍경, 대낮을 밝히는 촛불의 일렁임까지 갓바위 부처님은 말없이 굽어보고 있다.
약사암에서 선본사 가는 길
이젠 이 간절함이 넘치는 특별한 공간을 떠나야 한다. 갓바위 부처를 바라보며 왼쪽으로 내려가면 대구 방향이다. 선본사로 가기 위해 잠시 들렀던 유리광전은 입구에서부터 이어지는 삼천 개의 갓바위 부처상과 연꽃 초가 인상적이다. 대웅전으로 내려와 처음 올라왔던 돌계단을 버리고 해우소 지나 약사암 쪽으로 내려간다.
약사암에서 선본사 가는 길
산길과 돌계단이 드문드문 이어진 호젓한 길을 내려가면 커다란 약병을 든 약사여래불이 있는 약사암에 들렀다 다시 올라와 선본사 이정표를 따라 계속 내려가면 부드러운 오솔길이 아름답게 이어진다.
약사암 가는 나무계단
가파른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처음 올라온 길과 만나고 이내 선본사에 다다른다.
선본사
수시로 변하는 생각과 상을 좇아 헉헉거리며 살아왔다. 그럴수록 뒤안길은 늘 허전하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때면 통과의례처럼 참다운 모습에 눈을 뜨며 살겠다고 다짐한다.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믿기 때문이다. 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과 홀로 봇짐을 지고 오르는 불자들의 발걸음에는 단련된 익숙함이 편안해 보인다. 나는 그들의 얼굴에서 마음을 밝혀 주는 고요한 즐거움을 읽는다. 새해에는 누군가를 물리치게 해달라거나, 내가 어떤 자리에 앉게 해달라는 소망은 다 거두고, 첫 마음 그대로 한 해를 보낼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 / 사랑하는 사이가 / 처음 눈이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 첫 출근 하는 날 / 신발 끈을 매는 마음으로 직장 일을 한다면 /…. (정채봉 시 ‘첫 마음’ 중에서)

내 소망이 타인의 고통이 되는 소원보다는 이렇듯 초심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묵은 한 해를 보내고 새로 맞이하는 한 해의 소원을 이루는 첫걸음이 아닌가 싶다.
▲ 글·사진= 윤석홍 시인·도보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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