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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종석 구미지역위원회 위원·정치학 박사
5년 전, 인도 북부 종교유적지를 여행할 때의 기억이다, 4대 종교의 발자취를 자칭 브라만 계급이라는 현지가이드와 함께 긴 여정의 마지막 여행지인 수도 뉴델리에 도착하였다. 고층빌딩이 즐비한 뉴델리는 숨쉬기조차 힘들었고, 뿌연 연막 속에 앞차의 번호판조차도 식별할 수 없을 만큼 공기가 좋지 않았다. 목이 답답해지며 호흡이 가빠오는, 이른바 최악의 ‘스모그’를 만난 것이다. 이게 말로만 듣던 스모그냐고 물었을 때, 현지 가이드는 스모그가 아닌 안개라고 했다. 이게 무슨 안개냐? 대기가 오염된 ‘미세먼지’ 아니냐? 라고 했더니 그는 끝까지 먼지가 아닌 안개라고 우겼다. 애국심과 자존심 때문에 미세먼지를 안개라고 우기는 가이드의 궤변에 쓴웃음을 지은 그때가 다시 생각나는 것은, 지금의 상황이 그 당시 인도여행에서 본 최악의 스모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안개가 많으며 목이 아파 와이셔츠로 목을 감싸고 다닌다던 초등학교 선생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시절, 그것이 유독성 스모그이며 대기오염 이라는 것을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난 뒤 알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성세대가 살아온 지난 세월은 배가 고팠을지언정 미세먼지라는 단어는 들어보지 못했던, 언제나 맑은 하늘을 가진 환경을 배경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풍족한 삶을 살기 위한 욕심이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시켜, 생명을 위협받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간의 욕심이 빚은 미세먼지의 위험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 근래이며, 그 피해를 우리가 직접 겪게 될 줄을 정말 예측하지 못했다.

미세먼지가 사람의 건강을 해치는 은밀한 살인자라는 사실과 단시간에 많은 인명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 심각한 환경재앙이라는 것은 과거 자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미세먼지로 인한 위험성이 나날이 심각해지는 지금,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세먼지의 위험성은커녕, 이웃 나라 중국에서 일어나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강 건너 불 보듯 치부했으니 무지도 이런 무지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토록 상황이 심각해져서도 현재로써는 뚜렷한 대책도, 해결책도 없으며 오직 비나 바람에 의존하는 자연적 해법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답답한 노릇이다.

‘기회비용’이란 어떤 선택의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말하며, 경제학용어로 ‘세상에 공짜점심은 없다’는 말과 같이 혼용해서 쓰는 말이기도 하다. 편리한 문명사회를 선택한 대가에서 지불하는 기회비용이 환경적 재앙이라고 할 때, 미세먼지는 재앙의 일부분이며 더 많이 도출되는 환경적 문제들이 우리나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인류의 부단한 진화와 풍족한 삶을 추구하기 위한 문명의 이기가 환경파괴를 끝없이 만들어가고, 편리한 삶을 위한 기술의 진보가 오늘도 멈출 줄 모르고 있다. 결국 작금의 미세먼지로 인한 환경적 재앙이 오직 이웃 나라 중국의 탓이라는 변명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의 경제발전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지만, 그들이 먹은 공짜 점심값을 우리를 포함한 이웃 국가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 환경재앙이다. 그러나 우리가 먹은 점심값을 다른 이웃 국가가 지불해야만 한다면 그 책임은 누구의 것인가. 따라서 공짜점심값과 같은 미세먼지는 우리의 자정노력도 중요하겠지만, 지구촌 전체의 특별한 각오와 의지 없이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고 어떠한 선택이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것이 기회비용이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다는 말이다. 풍요한 세상, 원인과 결과를 두고 환경적 재앙을 막기 위한 근본적 대책에서, 개인뿐 아니라 지구촌 공동체가 함께 실천할 수 있는 실질적 대안이 무엇인지 생각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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