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수용품 구입 발걸음 이어져도 소비자 지갑은 열리지 않아
지속된 경기침체·대형할인점·온라인 쇼핑몰에 자리내줘
온누리 상품권 구맥약정 체결·푸짐한 경품 행사 등 안감힘

설을 일주일 정도 앞둔 28일 포항시 북구 죽도시장에서 시민들이 차롓상에 올릴 제수용품을 구입하고 있다. 이은성 기자 sky@kyongbuk.com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설이 다가오면 들뜬 마음으로 전통시장을 찾던 시절이 있었다.

설을 앞둔 전통시장은 어린 자녀에게는 설빔을 사 입히고, 잘 익은 사과·배뿐만 아니라 풍성한 제수용품들이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시장 상인들은 넘쳐나는 소비자들 덕분에 톡톡한 재미를 볼 수 있었고, 소비자들은 눈을 어지러울 만큼 다양한 상품들로 마음마저도 풍성했다.

하지만 그런 전통시장의 빛이 날로 바래져 가고 있다.

오랜 경기침체로 소비자들의 유리지갑이 꽁꽁 닫혔고, 그나마 지갑이 열려도 전국 어디에나 들어선 대형할인점, 인터넷을 활용한 온라인 쇼핑몰 등에게 자리를 내줬기 때문이다.

설을 일주일 여 앞둔 27일 경북·대구지역 전통시장은 모처럼 만에 제수용품을 사려는 소비자들이 몰리면서 활기를 띠는 듯 했지만 흥정만 할 뿐 정작 지갑을 여는 사람들의 손길은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장용웅 구미 새마을 중앙시장 상인연합회장은 “유동인구만 많을 뿐 경기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면서 “지난여름 폭염으로 인해 과일과 채솟값이 치솟은 이후 시장을 찾는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구 서문시장

“명절 특수는 이미 옛말이 됐죠.”

지난 27일 낮 12시께. 대구 최대 전통시장인 서문시장 주변은 몰려드는 차량에 북새통을 이뤘다.

시장 내에 있는 주차건물로 들어가는 차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려 끝이 보이지 않게 밀렸다. 주차건물로 들어가는 도로가 마치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시장 내도 비교적 이른 시간대임에도 불구, 많은 시민이 시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경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설을 일주일여 앞두고 명절 특수를 누리는 듯했다.

서문시장의 명물 중 하나인 수제비 집을 비롯해 음식을 파는 가게들은 밀려드는 손님들로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니 명절 특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많은 시민이 몰렸지만, 일반 상품을 파는 상인들은 오히려 한숨을 내쉬었다. 제수용품과 설빔 등 설 관련 상품을 사는 사람들로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고 난 뒤 시장을 둘러보기는 하지만 정작 물건 구매로 이어지지 않았다.

남구에서 왔다는 한 50대 아주머니는 “설까지 아직 날짜가 좀 남아 요기를 한 뒤 가격만 미리 보기 위해 시장을 찾았다”고 전했다.

이날 서문시장에서 판매되는 떡국용 떡은 ㎏당 3000원, 곶감 한 봉지에 8000원에서 1만 원 사이, 남해 시금치 한단에 200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주부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금액과 큰 차이가 없다.

과일값은 지난해보다 크게 올라 사과 하나에 2000원, 배 하나에 4000원에 판매됐다. 결국 야채 등 일반 품목은 마트에 비해 가격 차가 크지 않고 과일 값은 오르는 등 시장에서 물품을 사야 할 이유가 많지 않은 것이다.

설빔으로 대표되는 옷가게도 사정은 비슷했다.

요즘 소위 ‘떨이’, 가격을 확 낮춰 판매하는 옷 가게들이 많다 보니 상인들은 시장에서 옷을 구입하는 사람이 과거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고 털어놨다.

30년간 서문시장에서 잡화점을 운영한 A씨(61)는 “오래된 단골손님으로 유지는 하지만 명절이라고 특별한 것은 없다”며 “메이커 달린 옷이 곳곳에서 원가에 판매하는데 당해낼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상인들은 이 같은 현상이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고 명절 특수라는 말이 사라진 지 오래라고 입을 모았다.

△포항 죽도시장

지난 27일 포항 죽도시장. 설 명절을 앞두고 모처럼 분주한 모습이었다.

동해안 최대 어시장답게 설 제수용품을 구입하려는 주부들과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줄을 이었다.

주말을 맞아 가족과 함께 시장을 찾은 관광객들의 시선은 갖가지 생선이 놓인 좌판을 향해 바쁘게 움직였다.

한 손에는 장바구니를 들고 좋은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유심히 살펴보는 손님과 그런 손님을 한 명 더 받으려는 상인들로 시장 안은 북적였다. 2㎏ 넘는 문어 한 마리에 10만원대라고 설명한 상인은 “단대목이 되면 더 비싸진다”고 설명했고, 그 옆 조기장수는 “생선은 미리 사서 피득이 말려 구워야 안 부서진다. 미리 사서 말려라”고 권했다.

동태포를 구입하기 위해 손님들이 줄을 서며 기다리자 상인은 빠른 손놀림으로 꽁꽁 언 동태를 손질했다. 소금간까지 딱 맞게 뿌려 행여 비린내 날까 조심스럽게 포장을 해 손님들에게 전달했다.

시장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오꼬시(쌀과자) 봉지가 가득 쌓여있고, 쌀 튀기는 ‘뻥’ 소리에 손님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면서도 추억에 젖어 웃음짓기도 했다.

칼수제집은 장보러 온 고객들이 잠시 쉬는 곳. 제수용품으로 가득한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칼수제비 국물을 들이키며 언 손을 녹였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대목이지만 “장사는 예년만 못하다”고 상인들은 한숨지었다.

어시장 한 상인은 연신 뜨거운 물에 손을 녹이면서 “예전만 못하다. 옛날에는 갖가지 생선으로 탑을 쌓아 올렸지만, 이젠 한 두 마리만 사서 명절 제사 형식만 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건어물 가게 상인 역시 “예전엔 그래도 차례상을 푸짐하게 차리는 게 예의였고 전통이었는데, 요즘은 집 반찬용이나 한 끼 정도로만 제수용품을 구입하기 때문에 손님이 많아도 남는 건 많지 않다”고 말했다. 또 인근 대형마트들이 가격할인 공세를 하는 통에 요즘 전통시장 대목은 대목도 아닌 게 됐다.

육계를 파는 한 상인은 “예전보다 장사가 안된다. 그나마 60대 주부들이 단대목(명절 하루 이틀 전)에는 좀 찾아 오시겠지….”라고 기대했다.

허창호 죽도시장 연합회장은 “한파 등으로 인해 손님들이 전통시장을 찾지 않아 걱정은 했지만 대목을 앞두고 시장을 찾는 이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며 “그래도 여전히 상인들은 힘든 게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구미 새마을 중앙시장

“전통시장에는 대형 마트에서 살 수 없는 다양한 품목들이 있고, 무엇보다 에누리, 덤 등 각박한 세상 속에서 점점 잊어가고 있는 훈훈한 정을 담아 돌아갈 수 있습니다.”

지난 27일 오후 구미 새마을 중앙시장에서 만난 김분녀(65) 씨는 설 명절을 앞두고 전통시장 이용을 호소했다.

39년간 구미 새마을 중앙시장에서 생선, 해산물 등을 판매해 온 그는 “보통 설 명절 장은 미리 하는 편인데 올해는 아직 설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며 “무엇보다 구미 경기가 어려운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물건을 밖에 내어놓고 팔던 옛 방식에서 벗어나 최근 시장 안에 현대식 건물의 국내외 수산물 도소매점을 차린 그는 몸에 밴 탓인지, 아니면 예전 전통시장 냄새가 그리워서인지 따뜻한 점포 안을 벗어나 추운 밖에서 손님을 맞고 있었다.

최근 미세먼지로 인한 상인들의 건강 걱정에 대해서도 “미세먼지로 인한 건강 걱정은 사치”라며 “가뜩이나 위축되고 있는 전통시장 이용에 미세먼지 문제까지 겹쳐 전통시장 이용이 더 줄지 않을까 그것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옆에서 생닭과 오리 등을 판매하던 한 상인도 “올해 설은 멀리 굳이 지난해 설까지 안 가고 지난해 추석과 비교해도 또 다르다”며 “이렇게 조용한 설은 처음”이라고 거들었다.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구미 17개 기관·단체에서 1억9900만 원의 온누리 상품권 구매를 약속했지만, 아직 그 효과가 체감되지 않고 있다.

구미 새마을 중앙시장 상인연합회는 설 명절을 앞두고 전통시장 이용 활성화를 위한 제수용품 대 잔치 행사까지 마련해 푸짐한 경품을 내걸었지만 이에 대한 반응은 역시 미미한 실정이다.

장용웅 구미 새마을 중앙시장 상인연합회 회장은 “계속된 경기침체로 인해 다들 힘들겠지만, 전통시장 역시 갈수록 손님이 줄어들고 있어 상인들의 걱정이 많다”며 “올해는 1월 31일까지 설맞이 제수용품 대잔치 행사와 함께 푸짐한 선물을 준비한 만큼 저렴하고 정이 넘치는 전통시장에서 제수용품을 구매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현목, 남현정, 박용기 기자
김현목 기자 hmkim@kyongbuk.com

대구 구·군청, 교육청, 스포츠 등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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