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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성우 (사)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같은 미·북 정상회담이 돼서는 안 된다.

어제부터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다. 지난해 6월 열린 1차 미·북 정상회담은 70년간 적대시해온 미국과 북한의 두 정상의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상징적인 의미가 컸기에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8개월여 만에 다시 개최되는 이번 2차 미·북 정상회담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성과물을 세계에 공표해야 된다.

그러나 지금 6·12 싱가포르 회담 후 미·북 간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짐으로 인해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인 ‘비핵화’에 대한 크게 진척된 합의를 찾지 못한 상태에서 두 정상이 만나고 있다.

만약 또다시 1차 회담과 같이 알맹이 없는 선언으로 비정상 국가인 북한을 정상국가로 인정하거나, 북한의 ‘비핵화’를 용인하는 선에서 두 정상이 적당히 합의점을 찾는 회담 내용이 발표되면 우리에게는 큰 재앙이 되는 정상회담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동안 북한은 미·북 정상회담 이후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어떠한 징후도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겠다”고 했지만 핵무기를 포기하겠다는 확실한 약속은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핵보유국의 길로 가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북한은 작년 말 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우리의 핵 억제력을 없애는 것이기 전에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정의”라며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철거,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함으로써 ‘비핵화’의지가 없음을 여실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애초부터 북한의 속내를 알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미·북 정상회담 전부터 “궁극적으론 미국 국민의 안전이 목표”라고 발언하며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the 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에서 ‘선(先) 미국에 대한 위협 제거, 후(後) 완전한 비핵화’로의 전략 수정을 암시해 왔다. 특히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북한의 진짜 의도는 비핵화가 아니라 남한의 무장해제’라고 했고, 미국 정보수장들도 이구동성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만큼 트럼프 행정부는 대외적인 명분으로 북한 ‘비핵화’를 유지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자국의 안보와 이익 확보를 중심으로 북한과 타협하는 방향으로 궤도를 설정한 것으로 예상해서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북핵 폐기가 멀어지는 상황에서 우리는 북한의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중대한 안보 위협에 계속 노출되는 것은 물론 북한 핵으로 인해 한반도 평화는 고사하고 한반도가 또다시 세계의 화약고가 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이미 지난해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이후 9·19 남북군사합의로 대한민국 군의 무장해제가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한·미 국방 당국은 2019년 4월로 예정된 독수리훈련도 사실상 유예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하노이회담에서 북한과 미국의 셈법과 미·북 간 협상의 최종목표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두 정상이 결정하는 대로 따라가겠다는 우리 정부의 태도로 인해 대한민국 안보 상황이 대단히 우려스러운 상태다.

결국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제1조건이 북한의 ‘비핵화’라는 사실을 이미 전 세계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북한 ‘비핵화’가 완료될 때까지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는 없기 때문에 평화에 대한 지나친 환상은 우리 스스로 자칫 안보의식을 허물어 버릴 위험이 크다. 이번 2차 미·북 정상회담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우리정부는 대한민국의 국익과 안보에 문제가 되는 그 어떤 내용도 용인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이번 미·북 정상회담에서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국가 안위와 존속에 직결된 우리의 ‘안보’가 손상되지 않는 회담이 되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 운명의 주인은 우리다”라고 말하면서 “신 한반도 체제를 주도적으로 준비하겠다”고 천명했다. 문 대통령의 이러한 의지가 선언적 의미로 끝나지 않기 위한 선행조건 역시 한반도 ‘비핵화’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더 이상 미·북 정상들의 입에서 나온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일희일비하며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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