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익기씨가 2017년 4월 9일 경북일보에 보내 온 불타다 만 훈민정음 상주 해례본 일부. 경북일보 DB.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하 상주본) 소장자인 고서적 수집·판매상 배익기(56)씨가 문화재청의 상주본 강제집행을 막기 위해 제기한 소송에서 또 패소했다.

대구고법 제2민사부(박연욱 부장판사)는 4일 배씨가 문화재청을 상대로 낸 청구이의 소송 선고공판에서 원고의 항소를 기각했다.

지난해 2월 22일 대구지법 상주지원이 배씨의 청구를 기각한 지 14개월여 만에 또다시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1심 재판부는 형사판결에서 상주본을 훔친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았다는 사실을 내세워 상주본의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배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배씨는 "민사판결과 형사판결의 결론에 이르는 전제에 모순이 존재하고, 나에게 상주본의 소유권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과정에서 국가(문화재청)가 개입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면서 "민사판결에 따른 강제집행은 현저히 부당하고, 나에게 그 집행을 수인하도록 하는 것은 정의에 명백히 반하는 데다 사회생활상 용인할 수 없다고 인정되므로 그 집행은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되면 안 된다"면서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배씨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형사판결의 무죄 선고는 증거가 없다는 의미일 뿐 공소사실의 부존재가 증명됐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면서 "확정판결이 집행 권원인 경우 청구이의 소의 이의사유는 변론종결일 후에 생긴 것만 주장할 수 있는데, 확정된 민사판결이 있기 이전부터 상주본의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원고의 경우 민사판결 변론종결일 이전의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배씨는 2008년 7월 26일 골동품 판매상 조모씨의 가게에서 30만 원을 주고 고서적 2상자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상주본을 몰래 끼워 훔친 혐의로 2011년 9월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0년형을 받았지만, 대법원이 2014년 5월 29일 배씨에게 무죄 확정판결을 내렸다.

이와는 별도로 대구지법 상주지원은 2010년 6월 25일 배씨가 훔친 상주본을 조씨에게 인도하라는 민사판결을 내렸고, 2010년 12월과 2011년 5월 대구고법과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을 확정했다.

조씨는 2012년 5월 3일 문화재청에 상주본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이듬해 12월 26일 지병으로 숨졌다. 이에 문화재청은 상주본을 배씨에게서 회수하기 위해 민사판결 집행문 부여신청을 했고, 법원은 2016년 12월 14일 집행문부여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배씨는 형사판결에서 상주본을 훔친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기 때문에 상주본의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어서 민사판결의 집행력은 배제돼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한편, 배익기씨는 지난달 26일 서울의 법무법인을 통해 상주본의 소유권을 판단한 민사재판과 자신이 절도 혐의로 기소된 1심에서의 핵심 증인 3명을 대구지검에 고소했다. 법정에서 배씨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사실과 다른 진술을 했다는 혐의를 주장하고 있다. 사실상 재심을 고려한 조치다.

배준수 기자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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