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위해 목숨 바친단 일념으로 작전에 투입된 전투 무조건 승리"

해병대 1기생 이봉식옹이 경북일보와 인터뷰 중 ‘호국충성 해병대’를 결의하면서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이은성 기자 sky@kyongbuk.com
오는 15일은 대한민국 해병대가 창설 70주년을 맞는 날이다.

한국전쟁 등 많은 전투에서 공을 세운 해병대의 산역사 이봉식(88·해병1기) 해병대 전우회 영포지구 원로회장을 직접 만나 호국의 역사를 직접 들어봤다.

월미도로 향하던 군함 위에서 바라본 하늘은 마치 구름같은 하얀 연기로 가득 차 있다.

곳곳에서 들리는 포탄과 폭격 소리에 귀가 멍하다.

나라를 위해 죽을 각오를 다졌지만 어느새 부모님과 가족들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상륙정에 탑승해 작전 명령을 기다린다. 수백 대의 상륙정이 바다를 채우고 있는 모습을 보니 불현듯 자신감이 넘친다.

작전이 시작됐다. 육지에 가까워질 수록 초토화된 인천이 눈에 들어온다. 결국 상륙작전은 대성공을 거뒀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라는 말이 있죠. 우리 모두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일념으로 작전에 임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해병 이봉식 회장이 1950년 9월 15일 한국전쟁 당시 투입됐던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이 회장은 1949년 4월 15일에 창설된 해병 1기생이다.

그는 입대 후 1년 만에 ‘6·25 전쟁’을 맞았다. 당시 20살, 앳된 이봉식 해병은 분대장으로서 12명의 분대원과 함께 작전에 투입됐고 월미도에 상륙해 작전개시 2시간 만에 한·미 해병대는 점령을 완료했다.

이 회장은 인민군에게 밀려 방어 일색이었던 당시의 전세를 일거에 뒤집어 역사에 남아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인천상륙작전을 직접 겪었다는 사실이 무척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맥아더 장군이 주도했던 상륙작전이 성공하지 못했거나 없었더라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과는 또 다른 모습에 우리는 살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고 덧붙였다.

1연대 3대대 11중대 분대장이었던 이봉식 회장은 37개월간 이어진 전쟁 중 전국을 누비며 수많은 크고 작은 전투에 참전했다.

해병대가 17일에 걸쳐 도솔산 24개 고지를 모두 점령해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무적해병’의 친필휘호를 받게 된 ‘도솔산 전투’에서도 그와 분대원들은 다양한 임무에 투입됐다.

그는 “도솔산 전투 당시 정찰 임무 수행 중 산봉우리 하나 넘어 포진된 중공군이 쉴 틈 없이 퍼붓는 총알 세례에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분대원들을 앞장세우기 미안해 뒤따라 오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살아남은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정전이 된 후에는 진해 해병대 기지에서 신병훈련소 교육관으로 후배를 양성하다 1962년 전역했다. 군복을 입은 지 13년 만이다.

이봉식 회장은 전역 후에도 해병대 전우회 영포지구 원로회장을 맡는 등 60년 가까이 해병대와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해병의 주요 임무는 1949년이나 2019년이나 한결같다. 작전에 투입돼 치른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이라며 “후배 해병들의 단결을 통해 강인한 해병정신을 유지해 세계에서 으뜸가는 해병이 되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