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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
2019년 4월 둘째 주,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남북한과 미국의 서로 다른 셈법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오롯이 드러났다. 한국의 문재인 정부는 북미 간 타협을 시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굿 이너프 딜’(꽤 괜찮은 합의)과 ‘조기 수확’으로 대변되는 ‘포괄적 합의, 단계적 이행’ 방안을 갖고 4월 11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한국의 비핵화 접근은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이 북한의 핵 및 생화학 무기, 탄도 미사일을 모두 포함하여 동결, 신고, 검증, 폐기를 요구한 ‘빅딜’(대타협)에 대한 일종의 중재안이다. 한국은 북미 간 신뢰가 없는 상황이므로 한두 번의 연속적인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를 조기 수확하고 이를 바탕으로 비핵화의 최종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이 방안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수이다. 북미 간에 일련의 작은 합의인 스몰딜이 있어야 하고 북한의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는 대가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의 중재안을 사실상 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전에 예정되지 않은 기자 문답을 통해 한국이 제시했을 스몰딜에 대해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상황에서 북한의 핵무기를 제거하는 빅딜”을 원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상응 조치인 제제 완화에 대해서는 “현 수준의 대북제재는 계속해서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이후 공개된 한미의 언론 발표문에서도 미국이 한국의 중재안을 수용했다는 내용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12일 시정연설이 공개되었다. 핵심은 북한이 주장해 온 단계적·동시적·균형적 비핵화 접근을 지속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 요구하는 ‘빅딜’을 “일방적인 강도적 요구를 전면에 내들고 관계개선에 인위적인 장애를 조성하고 있는 미국의 시대착오적인 오만과 적대시 정책”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지금의 계산법을 접고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서”라고 요구했다. 시한도 “올해 말까지”로 못 박았다.

한 주간 드러난 남북한과 미국의 공통점은 3차 북미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3차 북미정상회담을 “한 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3차 북미정상회담도 있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한국은 한미정상회담 목표 중 하나가 3차 북미정상회담의 동력을 살려가는 것임을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북미가 제시한 3차 정상회담의 조건은 확연히 다르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은 조건”을 내세웠고, 트럼프 대통령은 “단계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서둘러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북한은 미국이 일괄타결에서 벗어나 북한의 ‘합리적인’ 셈법인 단계적·동시적 접근을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를 발신한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실무회담을 통해 미국이 제시한 비핵화의 정의, 최종상태에 대한 북한의 동의와 로드맵 작성을 요구한다.

결국 북미 둘 중 하나가 양보해야 문제가 풀릴 수 있다. 그러나 북한에 비해 미국은 느긋하다. 국내 정치적 곤경에서 벗어난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대선 때까지 북한이 특별한 도발을 하지 않는다면 구태여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없어 보인다. 대선전에서 외교적 업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내년 중반 정도에 오히려 극적인 타협을 모색하는 것이 유리하다. 반면 김정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에서 보였듯이 제재 압박으로 시간에 쫓기는 양상이다. 시정연설에서 올해 말로 시간을 한정한 것도 제재에 버티는 내구성이 다하기 전에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감의 반영이다.

한국의 입장이 어렵다. 미국과 북한은 각각 ‘동맹’과 ‘우리민족’을 내세우면서 한국에 대한 기대와 아쉬움을 동시에 표출 중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이 추진해야 할 최우선 순위는 핵 없는 북한이다. 그렇다면 답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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