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욕설과 몸싸움, 물컵 투척 등 정치권이 보여줄 수 있는 사실상의 모든 추태를 여과없이 보여줬다.

여야만 역할을 바꿨을 뿐이지 지난해 3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됐을 때 연출됐던 본회의장 상황이 판박이처럼 그대로 재연됐다.

지난해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이뤄진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 대해 격렬히 항의했던 열린우리당이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의장석 방어에 나선 점이 달라졌을 뿐이었다.

이날 오전 5시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 의원 등이 행정도시특별법안의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국회 법사위 회의장을 점거하면서 시작된 여야간 농축된 긴장은 김덕규(金德圭) 국회의장 직무대리가 이 법안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하면서 일순간에 폭발했다.

김 의장대리는 이날 108개의 안건을 일사천리로 처리한 뒤 "법사위에 금일 오후 9시30분까지 특별법안을 심사토록 지정했지만 심사를 마치지 못함에 따라 교섭단체 대표들과 협의한대로 특별법안을 상정한다"고 전격 선언했다.

김 의장대리의 발언이 끝나기도 전에 이재오 김문수(金文洙) 박계동(朴啓東) 배일도(裵一道)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 20여명이 "초헌법적 행위다"라고 소리치며 의장석을 향해 뛰어들어 육탄저지에 나섰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달려들자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몸으로 의장석을 사수했다.

열린우리당 선병렬(宣炳烈) 의원은 여성인 한나라당 전재희(全在姬) 의원을 거칠게 밀치면서 의장석 접근을 막았다.

단상을 주변으로 여야 의원들이 몸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열린우리당 김한길 의원은 특별법안의 제안설명자로 나섰다가, 한나라당 의원들이 던진 서류뭉치에 머리를 맞자 짜증섞인 표정으로 단상을 내려왔다.

박근혜(朴槿惠) 대표와 김덕룡(金德龍) 원내대표 등 한나라당 의원 40여명은 여야 의원간 몸싸움이 발생한 이후 본회의장에 입장했지만 몸싸움에 참가하지 않고, 의원석에 앉아 상황을 지켜봤다.

반대토론자로 나선 한나라당 안상수(安商守) 의원은 "숫자를 가지고 맘대로 해도 됩니까. 수도를 옮기는 것을 이렇게 억지로 처리해도 됩니까"라고 항의했다.

한나라당의 항의가 계속되자 김 의장대리는 "안되겠다. 회의를 계속 진행하겠다"며 의결을 선포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강한 반발이 계속되는 동안 표결이 진행됐고, 특별법안은 찬성 158, 반대 13, 기권 6표로 가결됐다.

한나라당 최연희(崔鉛熙) 맹형규(孟亨奎) 고흥길(高興吉) 김희정(金姬廷) 이혜훈(李惠薰) 이경재(李敬在) 주성영(朱盛英) 김기현(金起炫) 김석준(金錫俊) 진 영(陳 永) 의원은 반대표를 던졌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한나라당 의원들을 향해 "투표해, 투표해"라며 표결을 독려했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의원들은 많지 않았다.

김용갑(金容甲) 심재철(沈在哲) 의원 등이 서류뭉치를 의장석 방향으로 어지럽게 쏘아대는 가운데 김 의장대리가 특별법안 가결을 선포하자 한나라당 의원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김문수 의원은 의장석 앞으로 뛰쳐나가 의장 명패를 단상 위에 내리쳤다. 여당 의원들에 의해 단상 밖으로 끌려나온 김 의원은 물컵을 의장석을 향해 '투척'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또 의장석까지 뛰쳐나가 "그렇게 맘대로 해도 됩니까"라고 거칠게 항의하다가 정봉주(鄭鳳株) 최재성(崔宰誠) 이화영(李華泳) 의원 등 여당의 386 의원들에 의해 제기당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반발이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지만 김 의장대리는 경호권을 발동하지 않고 의사진행을 계속했다. 경호권을 발동할 경우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였다.

단상 주변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지난해 탄핵안 가결시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보여줬던 애국가 합창 장면을 연출했지만, 여당 의원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열린우리당 최재천(崔載千) 의원은 "의회주의를 말살하는 사람들이 애국가는 왜부르냐"고 쏘아붙였다.

김 의장대리는 "의장에게는 제지할 권한도 있고 퇴장시킬 권한도 있다"며 "원활한 의사진행을 위해 진정해달라"고 말했다.

김 의장대리는 특별법 가결을 선포한데 이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의 법적 근거를 새롭게 규정한 NSC법 개정안을 직권상정했다. 이종석(李鍾奭) NSC 사무차장의 직위와 관련된 법안이었다.

여당 소속인 김명자(金明子) 의원은 제안설명을 하기 위해 단상위에 올랐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이 고함을 치자 놀란 듯 제안설명을 포기하고 의원석으로 돌아갔다.

NSC법 개정안도 여당 의원들의 전폭적인 찬성으로 가결됐다.

김 의장대리는 한나라당 의원들을 향해 "날치기가 아닙니다"라고 강조했지만 단상 주변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날치기 무효'라고 합창했다.

김 의장대리는 이날 직권상정한 4개 법안 가운데 2개 법안에 대해서만 의결을 선포한 뒤 '국립사대졸업자 교원미임용자 임용특별법' 개정안과 '병역의무 관련 교원미임용자 채용특별법안'은 처리하지 않고 산회를 선포했다.

특별법 가결시 박수를 치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산회선포와 동시에 썰물처럼 본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한나라당 의원들은 분이 풀리지 않는 듯 텅빈 의사장에서 욕설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박계동 의원은 "악의 씨앗들아, 역적들아,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안상수 의원은 "당을 팔아먹은 놈들은 정의가 심판할 것이다. 당도 팔아먹고 땅도 팔아먹고"라며 한나라당 일부 지도부에 대해서도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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