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56억원을 조성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에게 업무상 횡령죄가 인정돼 벌금 3천만원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김득환 부장판사)는 29일 선고공판에서 비자금 조성 혐의 중 채권 2∼3장을 처분해 3억원을 임직원 및 현장격려금 등으로 사용한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 3천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비자금 조성 자체만으로는 불법영득 의사가 있다거나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볼 수 없고 전체 비자금 56억원 중 대부분을 해외도피한 서모 전 재무팀장이 횡령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정 회장을 선처했다.

검찰은 당초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기소했지만 재판부는 기업이 대표이사에게 맡긴 신임(信任)관계를 저버린 게 아니라 개인 용도로 회삿돈을 쓴 사실만 인정된다며 횡령죄를 적용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신주인수권 550만주를 처분해 마련한 비자금 중 3억원은 개인적 용도로 횡령한 사실이 인정된다. 판공비가 있고 현장격려금은 법인 손금으로 처리될 수 있으므로 비자금까지 조성해 사용할 필요는 없다. 본질적으로 회사 자금을 개인 자금처럼 사용한 것으로 판단하는 게 옳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신주인수권 처분 자체는 재량권으로서, 설령 회사가 실권하지 않고 싼 값에 매각했다고 비난할 수는 없는 데다 비자금 조성 자체만으로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고는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진승현씨를 통해 신주인수권을 처분해 조성한 비자금 56억원 중 정 회장이 보관하게 된 30억여원을 제외한 나머지 돈의 용처가 확인되지 않아 횡령한 혐의는 "해외도피 중인 공범 서모 팀장이 개인적으로 착복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부분까지 피고인에게 횡령ㆍ배임의 죄책을 물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기업 상당수가 비자금을 조성해 사용하는 관행이 있다지만 관행이 불법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사용한 돈은 3억원에 불과하고 공범이 대부분 횡령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는 점 등을 감안하면 건설사 임원 자격을 상실하는 집행유예 이상을 선고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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