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부품회사 40대 여성조합원 8명이 창립
어려운 일 많지만, 열정으로 승부 ‘신바람 경영’

대구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세진테크.

승용차 안에 들어가는 전선을 조립하는 이 업체 입구에는 회사 이름이 새겨진 간판 대신, ‘금속노동조합 세진테크지회’라는 명패가 달려있다.

공장 문을 열고 들어가면 넓은 작업장에 12명의 직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전선을 매만지고 있다.

이들 중 절반이 넘는 8명이 여직원이다.

게다가 모두 마흔 다섯을 넘긴 아줌마들이다.

집에 생활비라도 보태려고 일하겠거니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자동차 부품 회사를 세운 사람이 바로 이 아줌마들이니까.

지난 2005년 8월, 다니던 자동차 부품 회사가 문을 닫아 오갈 데 없어진 대구 금속노조 산하 여성 조합원 10명이 일을 저질렀다.

40대 나이에 가진 기술이라고는 ‘누구나 일주일만 하면 다 한다’는 자동차 배선 작업.

그런데 이 아줌마들이 있는 기업들도 문을 닫는 불경기에, 적지 않은 나이에, 겁도 없이 직접 공장을 차린 것이다.

170평의 오래된 빈 건물을 얻어 직접 닦고 쓸면서 작업장을 만들었다. 장비는 다녔던 회사와 거래한 자동차회사에서 얻어왔다. 원청업체의 손을 빌려보기도 하고 민주노총의 도움도 받았지만 공장을 세우는 데 무려 4천만 원이나 들어갔다.

잘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동지자가 있기에 힘들지 않았다.

정작 어려웠던 건 주위의 눈초리.

전문 경영인에 수십 명의 직원이 일하던 회사도 망하는 판에 40대 아줌마들이 차린 회사를 곱게 볼 리 만무했다.

뿐만 아니라 다니던 공장에서 노조까지 결성해 할말은 하고 살았던, 지역 자동차 부품업계에서는 꽤 별난 아줌마들이 아닌가.

공장을 돌리는 데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도 원청업체에서는 일감을 잘 주지 않았다.

‘다른 회사 보다 불량품이 많다’는 등등의 생트집도 일쑤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신뢰가 쌓여갔고 그만큼 물량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일이 좀 되려나보다’ 싶었는데 이번에는 원청업체에서 일이 터졌다. 자동차 회사 파업으로 하청업체들까지 모두 작업을 중단하게 된 것.

매달 167만원이나 들어가는 월세와 세금 고지서들이 밀리기 시작했다.

노동부 지원금으로 임금을 해결하며 간신히 버텨나갔다.

권오훈 부장(44)은 “잘 돌아가도 시원찮을 판에 그런 일이 벌어지니 죽을 지경이었다”며 타결 소식을 기다리는 데 속이 다 타 들어갔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그러기 몇 달.

원청업체의 노사 문제는 다행히 잘 해결됐고 멈췄던 공장은 다시 가동됐다.

파업기간에도 꿋꿋이 버텼던 모습이 원청업체에 믿음을 주었던 걸까.

한달 자동차 700대 분 밖에 되지 않던 하청 물량이 1500대로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고.

배귀옥씨(46)는 “야근도 좋고 주말 근무도 좋고 일거리만 있다면 일하고 싶다”면서도 “그동안 오래 쉬었으니 이거라도 감사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이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어려움은 적지않다. 그동안 밀려있는 세금도 갚아야 하는데 자동차 회사가 중국으로 옮긴다는 소문도 들린다.

하지만 아줌마들의 열정은 쉽게 식지 않는다. 설립 멤버 중 그만둔 사람은 단 두 명.

퇴사 사유도 회사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인 사정일 뿐이다.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데도 이들이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박수남씨(46)는 “다른 회사에 다닐 때는 회사가 어려워도 왜 어려운지 몰라서, 불만만 가졌다”며 “하지만 지금은 왜 어려운지 잘 아니까 서로 응원하고 나부터 더 열심히 하게 된다”면서 “아직 회사 형편이 낫지 않은데도 소문을 듣고 일하고 싶다는 사람이 줄을 섰다”고 했다.

비교적 건실한 자동차 부품 회사에 다니다 노조의 꼬드김(?)에 못 이겨 일하게 됐다는 이영식 차장(33).

그 역시 힘들지만 불만은 없다고.

이 차장은 “있던 회사에서는 편하게 지시만 내렸는데 여기서는 똑같이 일하면서도 월급은 (그 회사보다) 절반밖에 안 된다”면서 “그래도 노동자와 회사간의 믿음이 있으니까 신뢰 하나 갖고 일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금속노조 세진테크 조점향 지회장(47)은 “일을 하고 싶어도 이 나이에, 이런 불황에 우리가 지금 어딜 가서 일할 수 있겠느냐”며 “갈 수 있는 데까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볼 생각”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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