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환(섬김의 교회 목사)

세계동물보호협회(WSPA)는 최근 중국의 동물원에서 촬영한 동영상 및 사진을 공개했다.

곰에게 드레스를 입혀서 자동차를 끌게 만들고, 관람객들이 100파운드(약 18만원)만 지불하면 호랑이들이 소 한 마리를 통째로 잡아먹는 광경을 볼 수 있다고 세계동물보호협회가 폭로했다.

세계동물보호협회 측은 '먹이 주기 쇼'가 명백한 동물 학대에 해당한다면서, 중국의 동물원들이 이 같은 이벤트를 중지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와 유사한 사건이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5월 22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일어났다.

이천 시민 1천여 명과 하남 시민들이 '특전사 기무부대 이천 이전에 반대하는 규탄대회'를 벌인 것이다. 그런데 시위 마지막 순서로 이천 시민들의 분노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살아 있는 어린 돼지 네 발에 밧줄을 묶어 잡아당겨 죽인 것이다. 대역(大逆) 죄인에게 주던 최대의 형벌인 능지처참(陵遲處斬)은 죄인을 죽인 뒤 그 시체를 머리, 왼팔, 오른팔, 왼다리, 오른다리, 몸통의 순서로 6개 부분으로 찢어 각지에 보내 여러 사람들에게 보이는 형벌이다.

그런데 이 날 어린 돼지에게 행해진 일은 살아있는 상태에서 찢어 죽인 것이기 때문에 능지처참보다 더 끔찍한 형벌인 것이다.

이 뿐 아니다. 개풍녀사건, 대못 박힌 고양이, 호르몬제를 이용한 제주도 투마대회 등 각종 학대사건이 속수무책으로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성명서를 통해 "이러한 끔찍하고 악랄한 동물학대 행위는 아래의 현행 동물보호법 제6조 동물학대 금지 조항에 의해 금지되어 있다"며 "잔인하고 처참한 동물학대, 동물학살 행위는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1932년 '문화철학'이라는 책을 통해 알버트 슈바이처 (Albert Schweitzer)는 "나는 살고자 하는 생명체들에 둘러싸여 있는 살고자 하는 존재이다."라고 말하면서 '생명에 대한 경외'를 외쳤다. 지구촌의 모든 생명체들은 모두 다 살고 싶어 한다. 또한 각자 나름대로 살아갈 이유도 있다.

인도의 독립 운동가이며 평화주의자인 마하트마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는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나라의 문화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생명에 대한 존엄성은 동물, 인간, 식물 모두 똑같다. 지구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다들 자연의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유독 인간의 생명만이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가? 동물의 생명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인간의 생명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할 수 있다.

l7세기에 데카르트는 동물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보았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을 남긴 데카르트는 사유 능력이 없는 동물은 살아 있기는 하지만 기계나 마찬가지의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대 실천윤리학의 거장인 호주의 철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1975년에 쓴 《동물해방(Animal Liberation)》이란 책에서 동물도 고통을 느낀다고 말한다. 동물도 인간과 같이 고통을 느끼는 존재이므로 동물의 이익을 인간의 이익처럼 고려해야 한다고 피터 싱어는 주장한다. 동물의 이익이 윤리적 차원에서 고려되어야 할 이유는 그들이 이성적으로 사고할 능력이 있는가, 대화 할 능력이 있는가에 있지 않고 고통을 느낄 수 있는지의 유무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통과 쾌락을 감지할 능력이 있는 존재라면 마땅히 그들의 이익이 고려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피터 싱어의 견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다(마가복음12장31절)'는 성경 말씀이 있다. 이는 자연계의 모든 생명들에게로 사랑을 확대시키라는 뜻이다.

인간의 고통과 동물의 고통은 다르므로 인간의 고통에는 연민을 느끼지만 동물의 고통에는 연민을 느끼지 못한다는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인간과 동물, 더 나아가 식물에게까지 배려의 차원을 넓히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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