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베푼 사랑은 오히려 독”…가출·타락 악순환

좌담 참가자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정옥 위덕대교수, 제갈태일 전제철중교장, 조우정 전 포항여성문화회관장, 홍필남 포항여성문화회관장.

2005년을 맞이해 주요 여성현안들에 대해 지역 대표들과 공론의 자리를 마련했다.

제갈태일 시조시인, 이정옥 위덕대 교수, 조우정 전 여성회관 관장, 홍필남 현 여성회관 관장, 류권재 교육감 등 각계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아이들의 교육문제에 앞서 ‘엄마교육이 절실하다’를 과제로 좌담회를 가졌다.

‘좋은 자식을 기르려면’‘지나치게 똑똑한 엄마가 더 큰 문제다’‘엄마가 자녀에게 대하는 태도’등 여성의 건강한 정신이 건강한 자녀를 만드는만큼, 부모와 자녀와의 상관관계 등 떠오른 현안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본다.

●참가자=제갈태일:전 제철중학교장, 이정옥:위덕대교수, 조우정:전 포항여성문화회관장, 사회:홍필남 현 여성문화회관장.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주어 감사하다. 2004년은 성매매방지법 시행으로 떠들썩한 한 해였다. 또 청소년 탈선, 청소년 임신 등 많은 문제가 제기됐다. 여기에 대한 어른들의 견해는.

▲제갈태일- 마인드 맵(mind map)은 ‘마음속의 지도’이다.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열등감이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자녀를 이해하는 좋은 단서는 되겠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의 상처를 만든 장본인이 부모라는 사실이다. ‘문제아는 없고 다만 문제부모가 있을 뿐이라’는 지적은 빈 말이 아니다. 상처 난 자녀들의 ‘마인드 맵’이 폭력, 자살, 미혼모, 가출, 자폐증 등 청소년문제를 일으킨다.

▲이정옥- 지난 여름 지역의 중학교 학생들을 데리고 미국에서 개최되는 국제올림픽축제에 참여한 적이 있다. 주 행사는 체육경기였으나 우리 포항팀의 참가목적은 또래학생들의 국제적 감각을 익히고, 견문을 넓혀 소위 ‘세계시민교육’을 위한 것이었다.

학생들이 모범생이며, 또한 영리하기도 해서 국제무대에서도 손색없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나라 학생들에 비해 여러 모로 어렸다.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등의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헤매고 있음을 발견하고 참으로 당혹스러웠다.

그 이유가 무얼까? 동행한 선생님들과 여러 차례 진지한 토론을 하게 되었다. 도출된 결과는 학생들의 자질부족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부모들이 학생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라는 것이었다. 부모들이 자녀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무한 봉사’가 문제다.

▲조우정- 엄마가 자녀에게 대하는 태도는 대략 두 가지다. 첫째는 지도, 통제요, 둘째는 사랑이다. 통제가 과하면 학대가 되고 잘못 배푼 사랑은 과잉보호가 돼 무능한 자녀도 되고 오렌지족도 된다.

아이 문제는 기준도 공식도 없기 때문에 엄마와 자녀가 갈등을 겪으며 심하면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가출, 타락, 정신과 치료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땅의 어머니들은 현실적으로 자녀교육의 담당자다. 자녀들은 가정이란 테두리안에서 엄마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좋은 가정에서 자란 자녀도 탈선을 하고, 부모와 자식간의 의견대립이 심하다. 무엇이 문제인가.

▲제갈태일-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선진국에서는 아이들이 수학하는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학생들의 발달심리에 맞는 적극적인 부모역할을 가르친다.

먼저 부모는 자녀와 힘겨루기를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양보도 금물이다. 부모와 자녀관계는 적대관계도, 동등관계도 아니다. 십대들에게 부모는 지도자요 권위자다. 그러나 부모들이 아이들의 행동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생각들이 엇갈려서는 곤란하다.

▲이정옥- 요즈음 중·고 자녀를 둔 부모들이 지나치게 똑똑한 게 큰 문제다. 수 개월 전 서울 강남의 부모들이 자녀교육을 어찌어찌 한다는게 인구에 회자되고, 그것이 자녀를 훌륭히 키우는 전범인 양 언론에서도 선정적으로 보도되는 것은 참으로 쓴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우리 나라의 모든 부모들이 그럴 수만 있으면 하지 않을 자 없음이다.

▲조우정-사회현실도 난감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급변하는 사회에의 적응, 살아남기 위한 방책으로 일류학교 보내기 방책, 이 모든 것을 위해 수단방법을 안가리는게 현실이다.

부정부패의 고리 속에서 정직한 사람만이 손해보는, 그래서 가치관의 전도로 인한 교육의 표류현상, 여기에 가족간 불협화음까지 겹치면 도무지 자녀들에게 도움될 것이 없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서구문명이 빠르게 유입되다보니 아이들 사고방식 또한 서구적이 되가면서 부모와의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제갈태일-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부모들이 먼저 본을 보여야 하고 정해진 원칙은 꼭 지켜야 한다.

아울러 자녀들의 가정교육을 위한 세련된 기법을 배워야 한다. 문제는 아이들을 다스릴 부모들의 연장이 녹슨 톱과 낡은 망치뿐이라는 사실이다. 체벌이나 언어폭력 등은 아이들에게 상처만 준다. 손쉬운 방법은 일을 더욱 어렵게 할 뿐이다.

좋은 자식을 기르려면 부모부터 먼저 정신적 성숙을 이루어야 한다. 사랑하는 마음이 넉넉해야하고 아이들이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며 자식을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정옥- 자녀를 멀찍이서 지켜보고, 부모는 자신을 위한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 특히 어머니의 가족에 대한 무한 희생은 자녀에게 부담을 주고,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미래투자에 실패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공부하라는 잔소리하는 어머니보다, 스스로 책을 들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는 어머니의 자녀가 공부하고자 하는 동기부여를 더 받을 것이다. 자녀를 위하는 마음은 자신을 갈고 닦는 일이다.

▲조우정- 시내에 다녀보면 한 집건너 한 집마다 여성들이 모여 화투놀음을 하며 노래하고 춤추는 곳은 항시 초만원을 이룬다고 개탄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혼율 전국 상위권이란 말을 두고 학자들은 청소년 문제를 분석할 때 공통적으로 부부간의 갈등, 이혼, 결손가정 등을 원인으로 든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현실적으로 자녀교육의 담당자다. 숙명적으로 자녀들은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부모의 영향을 받는다.

때문에 자칫 어머니로부터 건전치 못한, 잘못된 습관과 제한된 경험을 전달받게 되면 조그만 환경의 변화에도 갈등한다. 자녀를 오염시키지 않는 부모의 태도는 부모가 공부할 수 있는 교육에서만이 가능하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문제해결을 기피하려 하고 부모에게 대든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제갈태일- 우선 십대들의 마인드 맵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접촉’을 통한 소속감의 강화다. 예를 들어 여학생이 귀걸이를 하기 위해 안달하는 것은 또래학생들과의 접촉을 위해서다. 일종의 생존본능이다.

공부만을 요구하는 부모와는 눈높이가 다르다. 또한 ‘힘’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가 있다. 키도 크고 몸도 굵어지고 자기 실력을 과시하기위해 부모까지 비판한다. 많은 경우 좌절을 맛보겠지만 이런 힘이 독립심으로 자란다. 부모는 배은망덕으로 보고 질책하게 된다. 그리고 ‘도전’의 욕구가 있어 스릴을 만끽하고 싶어 한다.

술을 마시고 성적 호기심이 발동한다. 마마보이에서 탈출하고 싶은 것이다. 이 경우도 부모들은 분노를 나타내며 아이와 힘겨루기를 한다. 인격적인 모욕이 담긴 꾸지람은 심한 상처를 남긴다.

▲이정옥- 예를 들면 최적의 온도와 최상의 조건을 갖춘 온실에서는 아름답게 자라지만 온실 밖을 나오면 맥을 못추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녀들을 키우는 태도가 문제다.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도록 해 주면서 오로지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식의 교육태도는 대단히 위험하고 미래성이 없는 교육방식이다.

▲조우정- 청소년 문제들을 분석할때 공통적으로 부부간의 갈등, 이혼, 결손가정 등을 원인으로 든다.

따라서 가치관의 전도로 인한 교육의 표류현상, 가족간 불협화음으로 이어진 미혼모 문제 등 10대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고등학생들의 우발적인 섹스, 중학생들의 실수로 인한 임신 등 성교육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에서 영화나 드라마가 너무 앞서간다. 흥미위주로 바라보는 아이들의 정서도 문제다.

■`영화 ‘여고생 시집가기’는 만 16세 전에 결혼하고 1년 안에 출산을 하는 황당한 설정 때문에 시종 기막힌 내용이 전개된다. 아무리 웃고 즐기자는 코미디라지만 소재의 위험성에 순간 가슴이 섬뜩해진다. 우려되는 풍조 속에서 어머니가 지켜야 할 것은.

▲이정옥- 살면서 만들어지고, 헤쳐나가야 할 문제가 생길때마다 부모가 모든 것을 해준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자녀를 도무지 못 믿겠다는 불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본다.

자녀가 한 것은 믿지 못하겠거나 완전치 못하다고 판단하는 부모이니 자녀를 대신해서 완벽하게(그 완벽함의 잣대도 부모의 기준일 뿐이다.)해 주어야 한다는 것은 자녀교육에서 가장 경계해야할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미숙해도 그 노력을 칭찬해주고, 격려하는 부모가 훌륭한 부모 아닐까?

▲조우정- 국가위기 상황이 직면하자 영국 국민 대부분은 조용히 독서에 열중하고 중국인들은 차를 마시고, 한국인들은 술마시고 노래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어머니 세대는 정직과 근면, 성실함으로 일관했기에 삶 자체가 교육이었다. 아무리 교육을 통한 지식의 내용이 좋아도 실천하지 않으면 설득력이 없다.

어머니들이 떳떳하게 자기 세계를 준비하고 실천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지켜야 할 것은 정화수 같은 어머니, 인품과 향기를 지닌, 참된 어머니가 되는 자생력을 이 새해부터 키워나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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