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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바오로 2세두 차례 방한 각별한 인연
요한 바오로 2세두 차례 방한 각별한 인연
  • (연합)
  • 승인 2005년 04월 03일 22시 31분
  • 지면게재일 2005년 04월 04일 월요일
  •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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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복자 103위 시성
교황 요한바오로 2세 84년 방한84년 5월 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대구 시민운동장에서 거행된 미사및 서품식에 참석, 5만 5천여명의 신도 및 시민들의 환호를 받고 답례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생전에 1984년과 1989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교황의 첫 방한은 전세계 모든 가톨릭 신자들의 이목을 한국으로 쏠리게 한 일대 ‘사건’이었다.

이에 앞선 1983년 9월 바티칸의 교황청 비밀 회의장에서 한국 순교 복자 103위를 성인의 반열에 올린다는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가톨릭 2천 년 사상 이처럼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성인이 된 것은 처음이었다.

성인이 되려면 기적의 사례가 반드시 필요했는데, 이조차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면제된 것이다.

3개월 뒤인 11일 25일에는 더욱 놀라운 소식이 전세계에 전해졌다.

교황 여의도 성체대회 집전89년 여의도에서 열린 제44차 세계성체대회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모습 .

교황이 직접 한국을 방문해 한국 순교 복자 103위에 대한 시성식을서울서 올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시성식은 줄곧 로마의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됐었다.

한국의 신자들은 즉위 후 5년 동안 27만 ㎞나 되는 거리를 누비며 36개국을 돌아다닌 교황이 시성식을 위해 몸소 한국땅을 밟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자부심과 긍지를 느꼈다. 교황은 1984년 5월 3일 비행기에서 내려서자마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순교자의땅, 순교자의 땅”이라고 하면서 한국의 땅에 입을 맞췄다.

교황은 방한사에서도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쁨이 아닌가”라고 유창한 한국어로 말해 한국인들을 또 한번 놀라게 했다.

교황은 4박 5일 간의 일정을 마치고 한국땅을 떠날 때까지 신학생과 수도자, 주교단, 문화·예술인, 외교관 등 많은 이들을 만나는 한편 국립 소록도 병원을 찾아 나환자들에게 성금을 전달하고, 광주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 묘소를 참배하기도 했다. 1989년 10월 4∼8일에는 교황의 두 번째 방한이 이뤄졌다.

89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 방한8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참석한 제44회 여의도 성체대회에 몰려온 인파.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세계성체대회가 한국에서 개최됐기 때문. 교황은 이 기간에도 행사를 진행하면서 대부분 한국어를 사용해 참석자들을 감동시켰다.

교황은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젊은이 성찬제’에 참석해 약 1만 4천명의 젊은이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했는데, 미사가 끝난 뒤 젊은이들과 손을 잡고 ‘아리랑’을 합창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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