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의 편린·하느님 찬양

7일 일반에 공개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영성록(유서)은 가톨릭 교회 수장으로서 그가 가졌던 고뇌의 편린과 하느님에 대한 찬양을 가감없이보여주고 있다.

교황으로 선출된 이듬해인 1979년부터 2000년까지 작성된 이 영성록에서 가장주목되는 부분은 그가 2000년 사임을 진지하게 고려했다는 대목이다.

당시 교황은 “이제 내나이 80이 되는 올해가 (일과를 끝마칠 때 부르는) 시므온의 노래를 불러야할 때가 아닌지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고 적었다.

그는 교황의 직책이 하느님에 의해 주어진 것이며 하느님만이 그가 물러날 때를결정할 수 있다는 인식을 보여주면서도 물러날 때인지 가르쳐달라고 기도했다. “하느님이 1978년 10월16일 저에게 맡겨주신 이 직책을 언제까지 계속해야할 지알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교황 취임 날짜까지 언급하면서 기도는계속된다.

파킨슨 병을 앓고 있던 교황의 건강이 급속하게 나빠지고 새천년을 맞이하던 이해에 교황 선출 자격을 80세 미만 추기경으로 제한하는 규정을 언젠가 승인했던 요한 바오로 2세는 지금이 사임할 때 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교황은 가톨릭을 새 천년으로 이끄는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하느님에게교황으로 있는 동안 이같은 직분을 다할 수 있는 건강을 달라고 간구했다.

영성록에는 격동의 시간을 함께 한 교황의 시대적 고뇌도 엿보인다.

1980년 기록에서 그는 “이 시대가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고 혼란된 시기”라고 말하고 “교회의 행로도 신자나 성직자들에게 모두 어려워졌다”고 고백했다.

교황은 냉전 시대에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은데 대해 하느님을 찬양했으며 동구공산권 정권이 줄줄이 몰락하기 전 교회의 안전과 조국 폴란드의 안위를 걱정했다.

교황은 1981년의 암살시도를 하느님이 막아주었다고 말하고 “하느님이 새생명을주셨으며 지금 이 순간부터 더욱 더 하느님에게 속한다”고 고백했다.

교황은 이후 여러번 언제라도 죽을 준비가 돼있다고 말해 암살될 뻔 한 이후 죽음의 문제가 그의 마음 한구석에 언제나 자리잡고 있었음을 드러냈다.

영성록에는 그의 장례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돼 있다.

그는 영성록 앞부분 여백에”무덤이 아니라 맨땅에 묻히고 싶다”고 살짝 적어놓았다.

1982년 기록에서 교황은 추기경들에게 자신의 장지문제에 대해 크라코프 대주교와 폴란드 주교회의의 희망을 “가능한 한 만족시켜줄 것을” 요청했으나 3년후 기록에서는 장지 문제를 추기경들에게 맡긴다고 밝혔다.

유서에서는 성직자, 가톨릭 수장으로서의 고뇌 외에 인간적인 면모도 여실히 드러난다.

교황은 개인 재산을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고 밝히고 개인 비서인 지위즈대주교에게 자신의 사적인 개인 문서를 모두 불태우고 자신의 일상 용품들은 나눠줄 것을 당부했다.

가족과 어린 시절 등 되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기억은 황혼기에 접어든 교황에게도 각별했던 것으로 보인다.

2000년 3월에 기록한 부분에서 교황은 “삶의 끝이 다가오면서 나는 기억 속에서처음 시절과 부모, 남자형제, 여자형제(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 전혀 알지 못하지만), 세례를 받았던 바도비체 교구, 같이 지냈던 또래들,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대학시절 친구들, 노동자로 일했던 나치점령하 시절…로 돌아간다”고 적고 있다.

교황은 단 한가지 하고싶은 말은 “하느님이여 모두에게 상을 내려주소서”라고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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