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훈기자

"투표 안해요"

올해 2월, 우리나라가 좋아서 파키스탄 국적을 버리고 귀화한 N(33)씨. 그는 9일 첫 투표권 행사를 포기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흥분된 목소리로 투표를 하겠다고 약속하고, 취재에 응했던 터라 기자의 실망감은 더했다.

"점심시간 안에 돌아오기 힘들잖아요" 어눌한 말투로 N씨는 전했다.

그는 어이없는 얘기로 소중한 권리인 투표를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왜 그런가 속내를 가만히 보니, 업체 사장이 싫어하는 눈치였다. 양해를 구했지만 사장은 바쁜 데라며 말끝을 흐리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N씨가 일하고 있는 곳은 영세한 공구업체였다. 종업원은 3명뿐. 임시휴일인 선거일인데도 아침 일찍부터 종업원들이 출근했다. 점심시간도 고작 12시20분에서 1시까지 단 40분만 주어진다. 업무 강도가 심해 밥을 빨리 먹고, 몇 분이라도 쉬는 게 낫다고 한 종업원이 전했다. 또 다른 종업원은 '먹고 살기 바쁜데 투표는 무슨'이라며 핀잔을 놓고 지나갔다.

N씨의 우리나라 첫 투표권은 이렇게 허무하게 내던져졌다. 하지만 비단 N씨의 일만이 아녔다.

선거날 취재결과 대구에서 첫 투표권을 행사하는 귀화자 거의 모두가 포기했다. '아이가 아픈데 돌봐줄 사람이 없다'. '숙직을 해서 쉬어야 한다'. '경기도에 있다' 등 이유는 모두 달랐지만, 다들 바쁜 일상에 찌든 눈치였다. 당연히 하나같이 정치나 선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제18대 총선은 중앙선관위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상 유래 없는 최악의 투표율을 보였다. 정책 대결은 실종됐고, 대형 이슈도 없어 유권자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상황이 고스란히 귀화한 외국인들에게 이어진 것 같아 안타깝다. 선거도 모르고, 후보가 누군지도 알지 못한 채 첫 투표권을 포기한 그들. 행여 앞으로도 그들이 소중한 권리 행사를 저버리지 않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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