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원 화인의원 원장
이재원 화인의원 원장

터널이론으로 유명한 세계적 경제학자 앨버트 O. 허시먼은 지난 수백 년 동안 보수 정치집단이 구사해 온 개혁에 대한 반동논리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세 가지의 정형화된 패턴을 찾아냈다. 그의 저서 ‘보수는 어떻게 지배 하는가’를 통해 소개된 그 유형들이란 ‘역효과 명제’, ‘무용 명제’ 그리고 ‘위험 명제’ 등이다. ‘역효과 명제’란 어떤 정책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부작용 또는 취지와는 반대로 나타나는 결과를 의도적으로 크게 부각시키는 것을 말한다. ‘무용 명제’란 사회변화를 위한 그 어떤 시도도 결국은 무위로 끝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일종의 허무주의를 조장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위험 명제’는 사회변혁을 위한 사상과 실천은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위태롭게 만드는 위험한 것으로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실, 보수가 구사하는 이러한 세 가지 수사학들은 여러 역사적 사실에 대한 나름의 평가와 이해를 통해 오랫동안 축적돼 온 결과다. 논리적 근거가 있고 지지층 사이에서 설득력을 얻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이 세 가지 수사학들은 우리 정치현장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등을 두고 보수야당이 자영업자들의 고용기피로 오히려 일자리가 줄고, 근무시간이 단축되는 만큼 수입 역시 적어져 결국 애꿎은 근로자만 피해를 볼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역효과 명제’에 해당한다. 그리고 현 정부·여당의 실정(失政)을 빌미로 탄핵정국 이전과 이후, 별반 달라진 게 없다며 초창기 개혁의 소리만 요란했지 결국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무용 명제’에 충실한 것이다. 또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과 남·북한 화해무드 조성 움직임은 한·미동맹 간의 균열을 초래하고 북한의 입지만을 키워, 결국 핵 억제는 물론이고 안보 자체에 큰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고 겁박(?)하는 것은 ‘위험 명제’를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을 뒤집어 생각하면 다른 해석으로도 가능하다. 즉, 역효과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정책수립에 세심함을 기울일 것과, 무용론을 잠재우도록 확고한 실천의지를 보여 줄 것, 그리고 위험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도록 소통을 강화하라는 주장으로 들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보수의 합당한 주장은 얼마든지 상호보완적 관점으로 이해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근거 없는 억지주장은 다르다.

최근 선거제와 검찰개혁에 관한 입법안이 ‘신속처리 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데 대해 이에 동의하지 않은 거대 보수야당이 ‘독재타도’ 와 ‘헌법수호’를 외치며 연일 원색적 비난의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얼핏 보면, 곧 나라를 망하게 할 수도 있는 법안이 다수의 횡포로 날치기 통과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엄밀히 보면, 이들 법안은 그동안 계속해서 논의를 해왔던 것들로서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일정 시점을 정해 그 기간 내에 반드시 처리하도록 하는 데 합의한 것뿐이다. 아직 정해진 기간 동안 여·야간의 협상을 통해 새로운 합의안을 도출해 낼 시간적 여유는 얼마든지 남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법안이란 것들 역시, 지난 대선에서 각 당의 후보들도 모두 동의한 적 있고, 국민적 공감대 또한 그동안 많이 형성된 선거제 관련 연동형비례제와 검찰개혁의 일환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 등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도 자신들이 신속처리안건 지정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민도 모르는 선거법’ 또는 ‘국민사찰 공수처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말이지 억지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왜 독재인지, 헌법의 어떤 가치를 지키겠다는 지, 정말 국민이 모른다고 생각하는지, 국민들 중 고위공직자가 얼마나 되기에 공수처가 생기면 국민을 사찰한다는 건지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허시먼 박사는 자신의 다른 저서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에서 기업 또는 조직, 그리고 국가가 퇴보의 길로 접어들 때, 이를 알아채고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세 단계의 현상에 대해서 설명했다. 우선적으로 고객 혹은 지지자들이 실망감을 안고 떠나는 ‘이탈’현상이다. 만약 이때 개선이 된다면 다행이지만 그러지 못했을 경우, 남은 사람들 사이에선 개선을 요구하는 ‘항의’가 빗발치는 상황이 온다. 그러다 이마저도 먹히지 않으면 결국 일부 충성파들만 남아 참고 견디며 ‘충성’하면서 원상회복되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지지층은 떠나고, 내외부로부터 쇄신을 요구하는 항의의 소리는 계파에 의해 막힌 지 오래며, 지금은 극우들의 충성 외침만 요란한 거대 보수야당의 앞날이 어떨지 무척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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