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대표·언론인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대표·언론인

김정은이 1년 6개월 여 만에 벼랑 끝 전략의 본색을 드러냈다. 문재인 정권이 그동안 대북 방어채비를 허물고 군사훈련을 중단해서라도 평화를 얻겠다는 구상이 얼마나 ‘착각의 대북정책’이었는가를 이번 북한의 전술유도 무기 등의 발사로 명백하게 드러났다. 북한은 지난 4일 김정은이 참석한 가운데 원산 북방에서 동해 상으로 대구경 장거리방사포와 전술유도무기 등의 발사 훈련을 했다. 북한은 지난 2017년 11월 29일 미사일(화성-15형)을 실험 발사한 이후 1년 6개월 만에 러시아가 개발한 미사일 ‘이스칸테르’급과 흡사한 단거리탄도 미사일급 실험을 이날 실시했다.

북한의 이번 무력 도발 훈련은 지난 ‘하노이 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난 후 미국과 유엔의 제재 압박으로 국가 경제가 지탱하기 어려운 상황에까지 이르게 됨에 따라 군사적 긴장감을 높여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관심끌기 술책’으로 보인다. 이런 사실을 감지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트위터로 “김정은은 나와의 약속을 깨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즉각적인 대응조치를 뒤로 미루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당초 트럼프도 볼턴 안보보좌관으로 부터 최초 보고를 받고는 “김정은이 나를 속였다”며 분노했으나 측근들의 만류로 13시간이 지난 뒤에야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내용의 글을 올렸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김정은이 경제제재 해제를 위해 트럼프와 대화의 판을 깨지 않으면서도 트럼프가 인내할 수 있는 ‘턱밑’까지의 벼랑 끝 전술을 계속 펼칠 경우 자칫 트럼프의 ‘불같은 성격’에 기름을 붓는 우(愚)를 범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김정은은 이번 무력 훈련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지난해 9·19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 서명한 ‘공중, 지상, 해상에서의 일체의 적대 행위를 전면 중지한다’고 한 군사 분야 합의 사항도 깨트렸다. 이런데도 지난 4일 오전 9시 북한의 방사포 발사 등을 처음 접한 합동참모본부는 방사포 등의 발포 직후 ‘단거리 미사일’이라고 발표를 했다가 40분 후에는 ‘단거리 발사체’라고 수정 발표를 했다. 이튿날 북한 측이 방산포 등의 발사 장면을 공개하며 ‘신형 전술유도무기’라는 발표를 하자 또다시 북한 측의 발표대로 그대로 바꾸었다. 이렇게 정부가 우유부단한 자세로 북한의 도발 수위를 애써 낮춰 평가하려고 한 것은 앞으로의 비핵화 협상의 판을 깨지 않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해석과 문 대통령이 그동안 공들인 대북정책이 파탄이 난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북한의 방사포 등의 발사 직후 정부는 최고 안보회의인 NSC(국가안전보장회의) 대신 한 단계 급수를 낮춰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해 국방부장관, 국정원장, 국가안보실1차장 등 안보관계 장관들이 참석한 ‘긴급회의’를 가졌다. NSC회의는 대통령이 회의를 직접 주재하는 최고위급 국가안보 회의다. 종전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 실험 등을 했을 때는 문 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주재하고 “강력한 응징이 필요하다” “분노”등의 대북 강경 표현을 썼었다. 그러나 이번엔 북한의 도발 훈련이 있은 지 6시간이 지난 뒤인 오후 3시 30분에야 청와대는 ”북한의 이번 행위가 남북 간 9·19 군사합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으로 매우 우려된다“고 첫 공식 반응을 나타냈다. 이날 북한의 행위는 문 대통령이 그동안 남북한 평화 정책을 위해 군사분계선 인근에서의 공중정찰 포기, 서북 5도에서의 포격훈련 중단 등 우리 군의 방어채비를 허문 행위가 착각이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 되고 말았다. 김정은은 이번 무력도발 훈련 현장에서 “강력한 힘에 의해서만 평화와 안전이 보장된다는 철리를 명심하라”고 말했다. 이 얼마나 주객이 전도된 행위인가. 이제 문 대통령은 김정은의 비핵화에 대한 ‘한반도의 평화’ 환상에서 벗어나 우리 군에 무장의 재정비 명령을 내려 강력한 방어 태세를 갖추어야 할 때다. 지난 8일 패트릭 새너핸 미 국방장관대행은 미 상원 청문회에 참석해 북한의 이번 동해안 발사체에 대해 “로켓과 미사일”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도 우리 국방부는 지금까지 북한의 발사체에 대해 “분석 중”이라고만 말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꾸물대지 말고 국민에게 ‘북한의 발사체’에 대해 그 실체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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