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 속에 달팽이 한 마리 붙어 있다
제 몸피대로 커온 낡은 집을 끌고
어떻게 왔을까 사월 초파일 입적(入寂)하려고
별, 이슬과 함께 연등 속으로 들어왔던 거다

수염달린 고승처럼 마지막 남은 뿔 세우고
붙여진 이름들을 향해 복 빌어 주던 마음
온 몸을 궁글리면서 층계층계 / 소망의 곬을 만들고 있다
몸을 한 번씩 비꼴 때마다 / 비 막아 주던 벽들도
촉촉한 바람이 지나가던 출입구도
둥근 원이 되어, 점점이 번져가는 연등들

이제, 두 귀만 열어두고 바람 소리 들으면서
온 몸을 집안으로 들여놓는다
보시(布施)할 때가 되었는지
순간, 스르륵 힘이 풀리더니
툭, 땅으로 공양을 드린다

껍질만 남기고 알맹이는 가져가라고





<감상> 초파일을 앞두고 제 시를 감상하려니 염치가 없습니다. 평론가 이숭원 선생님의 평으로 대신하겠습니다. “달팽이의 낡은 집은 벗어버려야 할 육체의 질곡이며 아직도 남아 움직이는 두 뿔은 고승의 수염처럼 복을 빌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이 시의 설정이 재미있는 것은 달팽이가 연등 속에 들어온 것으로 처리한 점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찬양하는 연등 속에 달팽이가 들어 있고 결국은 땅에 떨어져 목숨을 바치는 공양을 드리는데, 그것을 껍질은 남기고 알맹이를 보시하는 상징적 행위로 보았다. 이 시 역시 독특한 시각의 전환적 의식이 작품의 위상을 유지하는 근거가 되었다.”<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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