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숙 기획자(ART89)
김경숙 기획자(ART89)

오래전 전시장에 갔다가 ‘사진 잘 찍었다’하고 나왔는데… 그림이었다. 현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사실같이 표현해 놓았다. 그때는 작가의 의도나 작품세계가 궁금 하는 것 보다 ‘어떻게 그렸지?’였다. 작가의 대단한 노력이 들어갔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차라리 사진을 찍지 힘들게 그림을 그리는지 의아해 할 수도 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진짜같이’ 표현한 그림. 극사실주의(hyper realism) 그림이다. 1960년대 후반에 미국에서 일어난 미술 경향의 하나이데, 뉴욕을 중심으로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던 팝 아트의 영향 아래 발생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미지화하려는 작가의 의식조차 억제하려는 점에서 팝 아트와 구별된다.

참고로 ‘보드리야드’의 철학을 보면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받아들여지고, 이에 더하여 가짜가 진짜를 대체하는 현상을 탐구한다. 여기서 가짜를 시뮬라크르(simulacre)라고 하였고, 이것의 동사적 형태를 시뮬라시옹(simulation)이라고 하였다.

정창균 작가와의 만남도 ‘너무 잘 그린, 진짜같은’ 그림 때문이었다. 겉으로 표현 되어진 작품만 보고 전시기획을 하였다. 관람객들도 신기해하며 작품 가까이 다가왔었다. 대중들의 관심으로 전시는 성공한 듯 보였지만, ‘나’ 자신은 그림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작품의 외형만 관심을 가지고 바라봤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그림으로 작가를 다시 만났다. 나는 새로운 지역, 사회변화로 힘든 시간을 보낼 즈음이다. 마음을 위로하고, 다스리는 시간이 필요했다.

‘한국의 극사실 회화는 미국의 극사실 회화와 유사성을 가지면서도 독자성을 가진다. 소재적인 측면에서 미국의 극사실 작가들의 주요 소재는 네온사인, 자동차, 오토바이, 슈퍼마켓 등 공업 생산물로서 미국의 소비 사회를 반영한 소재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한국도 비슷한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문화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유사한 부분도 있지만 한국의 극사실 작가들이 선택한 사물은 공업 생산물이 아니라 자연물인 경우가 많다….

한국 극사실 회화의 또 다른 특성은 ‘상징성’이라 볼 수 있다. 화면에는 암시와 은유의 메시지를 지닌 시각적 장치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 정창균 작가(박사 논문 중)

정창균 작 ‘명견지수’.
정창균 작 ‘명견지수’.

정창균 작가는 ‘그을림’ ‘시간여행’ 연작에 이어 2011년부터 ‘명경지수’ 연작을 발표하고 있다.

명경지수(明鏡止水). 풀이하면 ‘맑은 거울과 고유한 물’이다. 그림을 보면 펼쳐진 책과 그 위에 꽃, 과일 등이 놓여져 있으며, 바닥의 거울은 사물들을 비추고 있다. 외형으로 나타난 사물은 ‘진짜 같은’ 정교한 표현이다.

극사실 회화에서 중요한 점은 대상에 대한 극명한 재현을 통해 지각작용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감각과 인식은 형상을 예리하게 묘사하거나 인식하는 중요한 통로다.

드러난 외형과 거울에 비친 본질적인 형상. 책은 삶의 진리. 정신적 소통을 매개하고, 거울은 마음(心)을 나타내고 있다.

‘본래의 마음은 특정한 모습이 없고 텅 빔(空)이니 맑고 고요한 상태이다. 그러나 세속에 인간의 마음은 수많은 관계로 인해 마음이 흐리고 흔들려 동요가 일어난다. 이러한 감정적 변화에 있어서 '명경지수' 연작은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이황의 심론(心論)과 같은 수양적 자세와 같은 과정을 갖는다. 부단히 갈고 닦아 깨끗한 거울에 온전히 모든 것들이 있는 그대로 비추어지듯 끊임없이 텅 빈 고요한 마음의 상태가 되도록 하고 유지하는 학문의 공부와 실천적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로써 사물과 인간 모두에게 근원이 되는 이치를 깨닫고 다스려진 텅 빈 고요한 마음에 비추어진 象을 드러내는 작업이 ‘명경지수’연작이다’ - 작가

작가의 그림을 천천히, 고요하게 바라본다. 작가는 작품 작업을 통해서 ‘나’ 자신은 그림 감상을 통해 마음 수행을 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림 속에 ‘나’가 있고, ‘나’를 비추는 거울이 있다. 그림은 진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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