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정신질환자에 대한 대책이 발표된 15일 대구에서 아찔한 사건이 발생했다.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호텔 별관 1층 휴게실에 50대 남성이 불을 지른 것이다. 이날 방화로 36명이 가벼운 부상을 입었고, 이중 26명이 연기를 흡입해 병원 치료를 받았다.

화재가 난 별관에는 40여 명의 투숙객이 묵고 있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뻔 했다.

이날 불을 지른 50대는 경찰 조사에서 환청과 과대망상 증세가 있어서 과거 수 차례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고 한다. 범인은 마약에 취해 불을 지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국에서 이처럼 정신질환자에 의한 강력 범죄가 잇따르고 있어서 정부가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정부는 이날 정신질환자의 강력 범죄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한 종합대책을 내놨다. 대구 호텔 방화에 앞서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돌봐주던 친누나 살해, 아파트 위층 할머니 흉기 살해사건 등 조현병 환자의 충격적인 범죄가 잇따라 사회 불안이 심각한 지경이 되자 정신질환자에 대한 대책을 내 놓은 것이다.

여러 차례 참극이 빚어진 뒤에야 대책을 내놓아 때늦은 감이 있다. 정부가 늦게나마 중증 정신질환자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는 점은 평가할만하다. 하지만 국가가 본인이 거부하더라도 치료나 재활을 받도록 강제하는 법적 조치가 빠져서 ‘대안 없는 대책’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는 현재 서울·부산 등 5개 광역시도에서 운영하는 ‘정신건강 응급 대응팀’을 내년 중에 전국 17개 시도 전체로 확대키로 했다. 응급 대응팀은 정신질환 관련 사건이 의심되는 사건·사고 현장에 경찰·구급대와 함께 출동해 재빨리 필요한 조치를 하는 것이 임무다. 경찰이나 구급대로부터 자·타해 위험성이 높은 정신 응급환자를 인계받아 즉시 치료하거나 더 적합한 병원으로 옮기는 역할 등을 하는 ‘정신응급 의료기관’도 지정된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강력 범죄 우려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에는 현재 조현병, 조울증 등을 앓는 중증 정신질환자가 50만 명 정도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중 7만7000명은 정신 의료기관이나 요양시설에 있고, 9만2000명은 지역사회 재활시설에 등록돼 있다. 나머지 33만 명 정도가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들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정신질환자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대구 인터불고호텔 방화 사건을 보면서 정신질환자에 의한 강력 범죄를 막기 위한 예산과 인력을 늘리고, 정부 대책의 시행 시기도 최대한 앞당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논란이 되고 있는 중증 정신질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더라도 국가가 책임을 지고 외래 또는 입원 치료를 받도록 하는 조치가 빠진 것에 대한 보완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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