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수도암 '도선국사비'서 22자 판독
"태자사비 원본 중 하나…유일한 친필"

박홍국 위덕대박물관장이 김천 수도암 ‘도선국사비’에서 신라 서예가 김생의 친필로 추정되는 글자를 판독했다.
김천 수도암 경내 비석에서 통일신라시대 서예가인 김생(711~?)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명문이 발견됐다.

박홍국 위덕대박물관장은 16일 김천시 증산면 청암사 부속 암자인 수도암 약광전 앞 ‘도선국사비’에서 김생의 글씨로 추정되는 글자 22자를 판독했다고 밝혔다.

김생 글씨는 그가 죽은 뒤인 954년에 승려 단목이 집자(集字)해 만든 보물 제1877호 ‘봉화 태자사 낭공대사탑비’에 있으나, 진적(실제 필적)은 현존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에 김생 친필로 보이는 글씨가 나타나 학계 이목이 쏠릴 것으로 전망된다.

재질이 화강암인 이 비석은 높이 177㎝, 너비 60∼61㎝, 두께 42∼44㎝ 크기다.

현재 표면 풍화가 심할 뿐만 아니라 색상이 밝아 명문 판독이 어렵고, 좌측 상부의 상태가 특히 좋지 않다.

본래는 세로 길이 4∼5.5㎝인 글자를 200자 정도 새겨졌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제강점기에 새긴 것으로 짐작되는 ‘창주도선국사’라는 커다란 글자 때문에 50여 자가 완전히 없어지거나 절단된 상태다고 박 관장은 설명했다.

비문은 8행으로, 행마다 26자가 있어 208자 이지만, 1~2자 빈곳이 있어 총 200여 글자로 추정했다.

이번에 박 관장이 확인한 글자는 7행 ‘입차비야’(立此碑也)를 비롯해 1행 ‘부진’(夫眞), 2행 ‘불은’(佛恩)과 ‘성덕’(聖德), 3행 ‘산밀’(山密) 등이다.

박 관장과 함께 비석을 조사한 정현숙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200여 자 가운데 약 20자를 판독했는데 그중 형태가 명확한 글자를 살펴보면 김생의 해서·행서 집자비인 봉화의 태자사비 글자와 거의 같다”고 주장했다.

최근 태자사비 명문 3000여 자를 모두 분석한 정 위원은 “수도암비는 7행 대(大)자의 마지막 획을 약간 아래로 처지는 점으로 처리했는데, 이는 태자사비와 매우 비슷하다”며 “비(碑)자와 야(也)자도 태자사비와 닮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수도암비 북위풍 해서가 태자사비 글씨보다 더 수려하고 전체적인 흐름이 자연스럽다”며 “수도암비 글씨는 현존하는 김생의 유일한 친필로 봐도 무방하며, 태자사비의 원본 중 하나로 간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관장도 “태자사비는 김생 글자를 모은 뒤 새겼다고 알려져 글자 크기가 제각각이고 어수선한 느낌이 있지만, 수도암비는 글자 크기에 차이가 별로 없고 단숨에 쓴 듯한 인상을 준다”고 말했다.

비석에 숨은 글자를 더 알아내기 위해 탁본 전문가와 함께 추가로 비석을 조사할 계획인 박홍국 관장은 이번 수도암비 금석문 연구 결과를 오는 18일 오후 2시 동국대 정보문화관에서 열리는 신라사학회 학술발표회에서 공개한다.
수도암 비석 4행 8번째 글자 탁본.박홍국 위덕대박물관장 제공.
수도암 비석 7행 12번째 글자 탁본.박홍국 위덕대박물관장 제공
수도암 비석 7행 13번째 글자 탁본.박홍국 위덕대박물관장 제공.
태자사 낭공대사 백월서운탑비 탁본.정현숙.
태자사 낭공대사 백월서운탑비 탁본.정현숙.
태자사 낭공대사 백월서운탑비 탁본.정현숙
수도암 비석 탁본 상태.박홍국 위덕대박물관장 제공
황기환 기자
황기환 기자 hgeeh@kyongbuk.com

동남부권 본부장, 경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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