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간 게재된 91명 시인 작품 엮어

즐거운 광장
2010년 8월 ‘광장으로 가는 길’이 ‘푸른사상 시선’의 첫 권 시집으로 세상에 선보인 지 9년 만에 ‘푸른사상 시선’ 100번의 시집 ‘즐거운 광장’이 간행됐다. 그동안 ‘푸른사상 시선’을 빛낸 91명의 시인들의 작품을 한데 모은 기념 시집이다. 광장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 어느덧 즐거운 광장을 만든 ‘푸른사상 시선’은 한국의 시집 시리즈 문화에서 충분히 주목되고 평가받을 만하다.

‘푸른사상 시선’ 100권은 한국 현대시의 또 하나의 정체성이다. 통합된 지속성이나 하나의 경향으로 아우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같이 밀착된 삶의 현장에서 생활과 시작을 병행해온 시인들의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지역과 다양한 현장을 아우르고 있어 우리 시대의 ‘지방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점 또한 의외의 성과를 보여준다. 시에 있어 ‘지방성’을 말하는 것은 제한적이겠으나, 관념이 아닌 사물과 현실을 말하는 시는 삶의 특이성들 간의 차별적 공간에서만이 활력을 얻는다는 점에서 결코 소홀히 취급될 수 없는 것이다.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가 모든 예술은 지방적인 것에서 시작돼야 하고 그래야만 오관이 시의 재료를 발견할 수 있다고 했을 때, 시가 어디에서 발생돼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오관이 외부세계와 무관하게 완결돼 있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최근 들어 우리 시의 급격한 변화와 위축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완성된 신자유주의 물결과 무관하지 않다. 매 순간 이익을 남겨야 하는 조급증에 들뜬 시간과 자기 긍정이 과열된 현실은 시의 느리고 섬세한 호흡을 질식시킨다. 조작된 현실에서 언어의 자율성은 현실을 왜곡하고 해체할 뿐만 아니라, 해체하는 자의 자기 동일성은 오히려 강화된다. 거대 체제에 대해서는 스스로 욕망하고 내면화하면서 자잘한 서정적 주체는 극단적으로 해체하는 타자의 시학으로 타자를 설득할 수 없다. 횔덜린이 ‘시인의 사명은 귀향’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회귀가 아니라 시를 질식시키는 집중화된 체제에 대한 저항의 의미일 것이다. 시는 다시 벌거벗은 자기 신체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모두의 고향인 ‘지방’성을 회복하는 일은 회귀가 아니라 저항이기 때문이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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