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문화재단 '신 입암별곡-장관을 청하다' 2회차 성료
4차 산업 급변기 사람 서로 도와야…마중 손님 유영재 포항예총 회장

유진룡 전 장관이 신 입암별곡-장관을 청하다 2회차에 초청돼인문 특강을 하고 있다.

“여러분은 (기득권에 안주하는) 양반이신가요? 아니면 (나라가 어려울 때 의병을 일으키는 정의와 배려의 정신을 가진) 선비이신가요?”

포항문화재단이 기획한 ‘신 입압별곡-입암사우, 장관을 청하다’ 2회차 초청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시민들에게 던진 화두(話頭)다.

유진룡 전 장관이 포항 문화 발전을 축원하는 방명록을 썼다.

18일 오후 봄비 속에 포항시 북구 죽장면 입암서원·탁립암·일제당의 한 폭 그림 같은 풍경을 보고, 지역 인사와 문체부 전 장관의 대화를 듣기 위한 시민들이 서원 앞 동산을 가득 채웠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입암서원 관계자, 지역 문화 인사 등이 입암서원 강당 안에서 환담을 나누고 있다.

차재근 포항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인사말을 통해 포항이 법정 문화 예비 도시를 넘어 올 연말 본 도시로 지정되기 위한 사업 일환인 신입암별곡 행사를 ‘독특한 사업’이라 정의하며 “과거로부터 전해진 문화 자원을 현재화해 문화 관광 콘텐츠 및 지역과 중앙 정부와 세계를 잇는 통로로 활용하고, 이를 넘어 미래 문화 유산으로 만들고, 시민을 바꾸는 소중한 작업”이라고 했다.

이어 지역문화진흥법과 문화기본법을 제정한 유 전 장관이 이 주제에 딱 맞는 초청인사라고 소개했다.

류영재 포항예총 지회장이 마중손님으로 나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마중 손님으로는 류영재 (사)한국예총 포항지회장이 먼저 나섰다.

류 지회장은 “어릴 시절 방학을 맞아 큰 이모님이 계신 죽장 입암으로 오는 버스는 청룡열차 못지않은 재미가 있었고, 이종사촌들과 서원 앞 계곡도 헤집고 다니며 좋은 추억이 많이 있다”고 입암서원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이어 겸재 정선이 포항 청하면에서 현감을 지냈고, 내연산과 청하읍성도를 그리면서 진경산수 화풍이 발현(發顯·發現:속에 있거나 숨은 것이 밖으로 나타나거나 그렇게 나타나게 함)된 역사적 사실과 관련한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미술사에 첫손 꼽히며 우리 그림인 진경산수화를 창시한 겸재의 그림이 포항에서 시작되고 완성된 인연을 기리고자 십수 년 전부터 ‘겸재 정선 진경산수 발현비’의 건립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지만 여러 이유로 아직 세우지 못했다”고 깊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어 “포항은 또 한국 수필문학에 큰 족적을 남긴 한흑구 선생과 인연이 깊지만 호미곶에는 ‘행랑채’ 수준의 문학관이 있고, 내연산 산자락에는 문학비만 있어 아쉽다”며 “발언 시간이 짧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라며 지역 문화 현실에 대한 애정을 쏟아냈다.

포항지역 젊은 국악인들로 구성된 육성사회적 기업 ‘한터울’이 입압별곡 가사에 소리를 입혀 만든 창작곡으로 축하 공연을 하고 있다.

축하 공연에는 지역 젊은 국악인들이 만든 육성사회적기업 ‘한터울’이 노계 박인로 선생의 ‘입암별곡’ 가사에 대금·장구 등 소리를 입힌 창작곡 등을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어 유 전 장관은 ‘격변기의 한국사회 속 우리의 삶이 지닌 가치와 의미’를 주제로 인문 담론을 펼쳤다.

그는 “친구가 있어 자주 찾는 포항은 어촌 이미지가 강했는데 산속 입암서원이 이처럼 경치가 좋은 줄 미처 몰랐다”며 “경상도는 비교적 지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포항은 수준과 관심이 높고 다르다”며 포항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어 “대한민국이 최근 40년간 괄목할 만한 발전을 해 역사상 이만큼 풍족한 적이 있었나 싶지만 ‘행복한가’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않고 불행하다는 사람이 많다”고 지적했다. 또 “국가 정책은 국민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목적인데 열심히 저 같은 공무원들이 열심히 일해 불행해졌다면 일을 잘못한 것”이라며 “지독한 경쟁사회에서 절대적 빈곤은 벗어났지만 부패한 기득권인 ‘그들’과 비교하며 상대적인 빈곤과 박탈감·부당함은 더 심하게 느끼는 사회가 됐다”가 진단했다.

이어 “피할 수 없는 저출산·고령화·4차 산업 혁명 사회 빈부 차이 등 격변하는 사회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길은 ‘서로 돕는 방법’밖에 없다”며 “함께 사는 방법을 찾는 것이 절실하다”고 했다.

그는 “세금과 병역 등의 의무는 지지 않고 각종 특권을 지닌 기득권인 ‘양반’이 시대를 불문하고 지금도 그 기득권을 공고하게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며 “입암별곡 가사 문학을 남긴 노계 선생도 임진왜란 시 의병활동에 참여했는데 조선도 결국 의병장과 백성이 나라를 지켰다”고 했다.

입암서원에 모셔진 여헌 장현광 선생도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여러 군현에 통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게 하고 군량미를 모은 인물이다.

이를 통해 “사람답게 살고 세상이 바뀌려면 선비 정신을 되찾고 선비가 되는 수밖에 없다”며 “선비란 공평과 정의, 배려와 사랑, 희생의 정신을 가진 존재다. 6·25 전쟁 당시 빨치산이 부잣집을 약탈하고 방화했지만, 전남 구례군의 고택 ‘운조루’는 무사했던 것은 이 같은 배려의 선비 정신을 실천했기 때문이라는 역사적 교훈이 있다”고 분석했다.

유진룡 전 장관이 기념휘호로 상선약수를 쓰고 있다.

유 전 장관은 “형식적인 문화 예술적인 정책이나 접근보다는 ‘함께 살고자 하는 마음과 정신’이 중요하다”고 말을 마쳤다.

이에 차재근 대표는 “포항이 문화도시로 갈 방향성으로 ‘시민(정신) 중심의 거버넌스가 중요하고, 이를 선비 정신에서 중점을 두면 된다’고 유 전 장관이 조언했다”고 정리했다. 유 전 장관은 특강에 이어 입암서원에 영구 보전될 휘호로 자신의 좌우명인 ‘上善若水(상선약수)’ 를 썼다. 앞서 김명곤 전 장관은 ‘律呂調陽(율여조양)’을 남겼다.

한편 입암별곡 3회는 오는 25일 오후 도종환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청(請)해 순서를 이어간다.

포항 죽장 입암서원 앞 계곡에는 노계 박인로 시비가 세워져 있다. 시비 뒷면에 노계의 의병활동 등 ‘선비’로서의 그의 일대기가 적혀 있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