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일 편집부국장

오월의 자연은 푸르다 못해 당당하다. 봄꽃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오월의 신록도 아름다움이 온 누리에 가득하다. 자지러지듯 쏟아지는 햇살, 연둣빛 자연은 짙어만 간다. 생명의 푸름은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나뭇잎은 햇살에 반짝이고 가지는 허공으로 몸짓을 가르며 춤을 춘다. 오월의 세상은 푸름으로 가득하다. 생명의 기운이 넘쳐난다. 푸른 들판 가득 피어오르는 오월의 향기에 세상은 흠뻑 젖어든다. 찰나마다 푸름을 더해가는 신록은 생명의 기운으로 감싼다.

그래서 오월은 축복이다. 오월의 자연은 땅 위에만 있지 않다. 오월의 짙은 생명력은 땅속에서 비롯된다. 생명의 근원인 물을 찾아 나서는 뿌리의 수고로움이 있기에 오월은 온다. 오월의 찬란함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자연과 세상은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치열함이 생명을 있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착각의 삶을 살아간다. 생명의 근본을 알아채지 못하는 우매한 삶이다. 굳이 현자(賢者)의 눈이 아닐지라도 혜안(慧眼)은 모두에게 열려있다. 근본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다. 그것엔 생명의 근원과 우주의 진리가 있다.

따라서 우리의 시선도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이 왜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알아채야 한다.

그래야 만이 참으로 진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진실한 삶’이란 ‘실재’(實在)를 바로 보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 세상은 ‘리듬’이 있고 ‘때’가 있기 마련이다. 오월의 들녘엔 벼가 결실을 향한 긴 여정을 시작하고 사과는 열매솎기 작업이 한창이다. 땅 밑엔 생명을 향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다. 인간 세상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말과 몸짓은 보이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인 것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정치와 외교가는 ‘평화’보다는 ‘거친 언어’가 판을 친다. ‘거친 언어’의 보이지 않는 마음속에는 치열한 이기심이 날카롭게 포진하고 있다. 그 이기심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언어가 첨병 역할을 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옛말은 다시는 맞지 않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힘이 센 자가 곧 정의가 되는 세상이 된 지 오래다.

힘의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면서 ‘가는 말이 거칠어야 오는 말이 부드럽다’ 말이 통용되고 있다. 거친 말이 힘센 자를 지칭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래서 힘의 권력에 순종하게 된다. 힘의 정의를 논하는 것은 약자의 몫인 서글픈 현실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예사롭지 않다. 북한 비핵화를 두고 하노이 북·미 정상 2차 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또다시 한반도 정세가 경직되고 있다. 이 틈을 타 중국과 러시아, 일본 등 주변 강국도 한반도 정세에 가세해 이익을 챙길 궁리에 열중이다.

그러나 정작 누구보다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한민국은 불행히도 그렇지 못하다. 우리의 운명이 결정될 엄중한 시국인데도 진보와 보수진영은 날마다 거친 언어를 내뱉고 있다. 정부의 한반도 평화 운전자 론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으로 명분을 잃어가고 있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민국 패싱’이 될지 우려되는 현실이다.

이제 나라 전체의 운명을 논해야 할 절체절명의 시점에서 당리당략만 주장하는 정치인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절박한 고민을 해야 할 때이다. ‘진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곽성일 편집부국장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