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2월.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민주당의 김대중, 통일국민당의 정주영 후보가 3파전을 형성한 대통령 선거전에서 대형 사건이 터졌다. 선거일을 일주일 앞둔 그해 12월 11일, 부산 대연동의 초원복국집에 직전 법무 장관을 지낸 김기춘, 부산시장 김영환, 부산지방경찰청장 박일용 등이 참석한 비밀 회동이 있었다.

비밀 회동이었지만 이들이 모여 대화한 내용이 도청돼 다음날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만든 통일국민당 관계자에 의해 언론에 폭로됐다. 식당의 이름을 따서 ‘초원복국집 사건’으로 명명된 이 사건은 대선을 1주일 앞두고 노태우 정부의 법무부 장관을 지낸 김기춘과 지역 기관장들이 모여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 되면 영도 다리에서 빠져 죽자”며 불법 관권 선거운동을 모의한 것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공식 석상이 아닌 사적 모임에서 나눈 대화를 가지고 처벌할 수는 없다”며 무혐의 처분하고 모임을 주재한 김기춘만 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김기춘에게 ‘선거운동원이 아닌 자의 선거운동’ 죄를 적용해 징역 1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김기춘은 김영삼 대통령 취임 직후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참정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어 위헌"이라며 법원에 위헌제청을 신청했다. 헌법재판소는 이를 받아들여 김기춘에 대한 재판을 ‘공소 취소’ 없던 일로 끝냈다.

지난 21일 서울 강남의 한 한정식집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장에 갓 취임한 양정철 원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4시간 이상 만찬을 함께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야당에서는 일제히 이 만남이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간 현 정부 정책에 적극 공조해 온 범여권 정의당까지 “매우 부적절한 만남이자 촛불 기반을 흔드는 심각한 사안”이라며 국정원장의 신중하지 못한 행동을 지적했다. 초원복국집 사건 수사에서 김기춘이 말한 것과 같이 양 원장은 “사적인 지인 모임”이라 했다. 양 원장은 민주연구원장에 취임하면서 “내년 총선의 병참기지 역할을 하겠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이자 여당 최고의 장자방으로 통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만남이 ‘초원복집 사건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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