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고을 이름 있는 유명 성씨의 마을에 들어서다 보면 으레 비석거리가 있다. 고을을 다스렸던 수령들의 송덕비가 길가에 줄지어 서 있는 것이다. ‘송덕비’라고 해서 수령을 지낸 이들이 모두 선정을 베풀지는 않았을 것인데 경쟁하듯 줄지어 세운 것들이다.

옛날 사람들 말에 “못된 원님일수록 큰 송덕비 세워달란다”는 말이 있다. 이 때문에 송덕비에다 길손들이 침을 뱉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비석에는 모두 ‘애민(愛民)’, ‘선정(善政)’, ‘청덕(淸德)’을 베풀었다고 했지만 고을 백성들은 원수 같았던 원님의 행적을 잘 알기에 “개뿔! 선정과 청덕은 무슨…”하며 퉤퉤 침을 뱉었을 것이다. “비석은 썩지 않는 시체(屍體)”라고도 했고 “사람들이 비석을 세우는 것은 죽은 자의 체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산 사람들의 체면을 빛내기 위한 것일 때가 많다”고도 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산업화 이전 아이들의 놀이 가운데 ‘비석치기’라는 것이 있었다. 어른 손바닥 만한 넓적 돌을 주어다가 ‘비석’을 세워두고 4~5m 거리에 금을 긋고는 돌을 던지거나 겨드랑이에 끼기도 하고 머리에 이고 가서 비석을 맞춰 쓰러뜨리는 놀이다. 민속학자들 가운데는 이 놀이에 가렴주구를 일삼던 탐관오리에 대한 저항 정신이 담겨 있다고 한다. 비석거리의 비석을 깨부수면 붙잡혀 갈 것이기 때문에 작은 돌을 치고 깨부수는 놀이로 대신 화풀이를 했다는 것이다.

경북도청 솟을대문 옆에 난데없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어서 논란거리라고 한다. ‘경상북도 신청사 준공 기념비’라는 이 비석에는 도청 이전에 수고한 주역들의 이름은 쏙 빠진 채 기념비를 세운 추진위원들의 직책과 이름만 염치 없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청사 관리인도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생겼더라”며 건립 경위를 모른다니 웃기는 일이다.

이 때문에 도청 이전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은 대문 간을 지날 때마다 “개뿔”하며 기념비를 못마땅해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살아 있는 사람의 체면을 위해 절차나 내용도 무시하고 세운 이 비석은 흉물스럽기까지 하다는 지적이다. 도민들이 모두 ‘퉤퉤’ 침을 뱉기 전에 당장 철거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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