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우 사)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

허성우 사)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
허성우 사)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

일본 아베 총리는 이달 말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를 한반도 중재자 역할의 적임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외교적 장(場)으로 최대한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지난달 27일 있었던 미·일정 상회담은 우리나라에 큰 과제를 남겼다. 미·일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다정히 셀카를 찍으며 골프와 스모 관람 등으로 우의를 다지는가 하면 미·중 패권경쟁과 북한 핵 문제와 같은 동북아 긴장 속에서 두 사람이 함께 자위대 호위함에 승선(乘船)하는 모습은 예사롭게 볼 수만은 아닌 것 같다. 이는 미국이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힘을 보태주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에게 동북아 패권과 관련해 일본에게 힘을 실어주는 상징성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미·일 정상이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일 공조(共助)의 중요성’을 자주 언급했던 것과 비교해보면 매우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우리 정부가 맹목적으로 남북문제를 지나치게 온정주의(溫情主義)로 인식한 탓이 컸다고 보여 진다. 문재인 정부가 자국 이익과 함께 힘의 논리에 따라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는 ‘정글’과도 같은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척애독락(隻愛獨樂·상대편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는데 혼자서만 사랑하고 혼자서만 즐긴다)하는 사이에 국제무대에서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한국의 입지와 존재감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왔기 때문이다.

특히 북·미 회담이 결렬된 이후에도 문재인 정부는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재가동 등을 주장하면서 대북 지원 자금 800만 달러 공여를 결정하며, 대북 식량 지원 추진 의사까지 밝히면서 오히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기조에 엇박자를 내고 있다. 결국 이러한 문제들이 한반도 중재자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국제사회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외교적 신뢰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한·미 공조 균열로 일본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틈을 사실상 우리가 제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미·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전면 협력 약속까지 받아 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북·일 정상회담을 “전면 지지한다”고 밝혔고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아마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를 잇는 한반도 분쟁의 중재자로서 등판을 모색하고 있는 아베 총리에게 날개를 달아 준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일각에서는 북한이 일본을 상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도 제기하고 있지만 그동안 북한 외교사적으로 보면 아베 총리의 ‘한반도 중재자 역할론’이 결국 북·일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북한 외교의 기본전략은 일단 상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극단적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면서 기싸움에서 김정은 존엄(尊嚴) 모독에 명분을 찾았다고 판단되는 순간 전격적으로 외교 채널을 가동하는 특징을 보여 왔다. 과거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면서 북·미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2002년 당시 김정일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 총리가 북·일 정상회담을 통해 국교정상화를 체결한 전력을 우리는 경험한 사실을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쯤 되면 G20 정상회의에서 아베 총리가 한반도 중재자를 공식적으로 주장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 문제가 더 복잡하게 꼬일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륙과 해양이 교차하는 지정학적 위치와 무역에 대한 높은 의존도 때문에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여차하면 힘도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주저앉을 수 있는 상황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이런 외교적인 기본 사실을 알고도 외면한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자존(自存)·자강(自强)은 모든 나라가 바라는 외교적 목표임과 동시에 어떤 국가도 국익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명분(名分)과 이념(理念)을 걷어내고 오직 국익(國益)와 실리(實利)를 앞세우는 새로운 외교적 동맹(新외교 동맹) 전략을 정립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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