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고·경일대 선수 생활, 프로 진출도 못하고 29세 은퇴…유소년 지도자로 복귀
세네갈 꺾고 2019 U-20 월드컵 4강 진출…12일 에콰도르와 결승 진출 격돌

8일 오후(현지시간) 폴란드 비엘스코-비아와 경기장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8강 한국과 세네갈전의 경기.승부차기 접전 끝에 4강 진출을 확정한 U-20 대표팀 정정용 감독이 두 팔을 들고 주먹을 쥐며 기뻐하고 있다.연합

대구 출신 무명 선수가 감독으로 새로운 축구 신화를 쓰고 있다.

2019 FIFA U-20 월드컵에 참가한 한국 대표팀 감독 정정용이 그 주인공이다.

정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9일 새벽(한국시간)에 폴란드 비엘스코 비아와스타디움에서 열린 세네갈과의 8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다.

16강에서 숙적 일본을 1-0으로 꺾고 8강에 오른 대표팀은 세네갈 전까지 승리, 박종환 사단이 지난 1983년 멕시코 대회에서 4강에 진출한 뒤 36년 만에 ‘4강 신화’를 재현했다. 우리나라는 오는 12일 오전 3시 30분 루블린에서 에콰도르와 결승 진출 티켓을 다툰다

이번 4강 진출은 축구 천재 이강인을 중심으로 향후 10년 이상 한국 대표팀을 이끌 선수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지만 무엇보다 이들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만든 정정용 감독의 지도력에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정 감독은 전력상 앞서는 팀을 상대로 전반전은 철저히 지키는 축구를 유지, 체력을 아낀 뒤 후반전에 모든 전력을 집중하는 전술로 강호들을 차례로 꺾어왔다.

이는 이번 대회 한국 대표팀이 전반 1득점, 후반 6득점을 기록한 데서 확연히 드러난다.

또한 경기중 상대의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 유연한 전술 변화로 팀 승리를 이끌고 있다.

1969년 대구에서 태어난 정 감독은 신암초-청구중·고-경일대에서 센터백으로 활약했지만 크게 눈에 띄지 않아 축구선수의 꿈인 프로선수로 진출하지도 못했던 무명이나 다름없는 선수 시절을 보냈다.

지난 1992년 실업팀 이랜드 푸마에 입단해 1997년까지 6시즌 동안 활약했지만 부상 등의 여파로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한 채 29살 젊은 나이에 그라운드를 떠났다.

그러나 정 감독의 이른 은퇴는 유소년 축구 지도자로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오는 계기가 됐다.

 

8일 오후(현지시간) 폴란드 비엘스코-비아와 경기장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8강 한국과 세네갈전의 경기. 승부차기 접전 끝에 4강 진출을 확정한 U-20 대표팀 선수들이 한국 응원단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며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연합

은퇴 후 명지대 석사과정에 입학해 지도자로서의 자질 함양에 나선 그는 지난 2008년 U-14국가대표팀 코치로 컴백, 유소년 축구 전임지도자로 경험을 쌓아갔다.

2011년 U-17, 2013년 U-23국가대표 코치로 활약했던 정 감독은 2014년 프로축구 대구FC 수석코치를 맡은 뒤 2-15년 대구 U18팀인 현풍고 감독, 2016년 U-20 감독대행, 2017년 U-23 감독대행을 차례로 거친 뒤 같은 해 U-20팀 감독을 맡아 이번 쾌거를 이끌었다.

대구FC 수석코치와 현풍고 감독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대구FC 성호상 전력강화 부장은 “정 감독은 다른 스타 플레이어 출신 유소년지도자와는 성향부터 달랐다”며 “유소년 전임지도자 생활을 일찍 시작한 것이 결실을 맺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오랜 기간 유소년 지도자 생활을 한 경험이 어린 선수들에게 심리적으로 안정을 주고 눈높이에 맞는 지도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4세부터 시작해 연령대별로 밟고 올라온 만큼 어린 선수들의 변화에 대응하는 노하우가 쌓인 것도 이번 대회를 통해 입증됐다.

포르투갈에 연수를 받을 정도로 열정적인 자기 노력도 영향을 미쳤다.

성호상 부장은 “시대가 변한 만큼 지도자의 지도 스타일도 변해야 한다”며 “정 감독은 과거와 같이 강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의 지도자가 아니다”고 말했다. 또한 정 감독의 부드럽고 소통을 중시하는 성향이 어린 스타 선수들을 하나라 묶는 등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청구고를 함께 보낸 이상락 대구시장 민원보좌관은 정 감독에 대해 “한마디로 성실한 친구였다”고 되돌아 봤다. 이 보좌관은 “고교 시절 비록 팀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꾸준히 실력을 보여줬던 친구”라며 “항상 성실하고 착한 심성,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던 것이 지금의 결과를 이어진 것 같다”고 강조했다.

대회 시작과 함께 죽음에 조에 들어가는 등 큰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정 감독의 모교인 청구고의 기대감은 남달랐다.

청구고는 대회 시작 직전 학교 정문에 학교 재학생·교직원·동창회 명의로 ‘FIFA U-20 월드컵 폴란드 2019 정정용 감독(중 30회·고 22회) 출전’ 현수막을 내걸었다.

우성훈 청구교 교장은 이날 새벽 밤잠도 제치고 일어나 경기를 지켜봤고, 피 말리는 승부차기 끝에 4강 진출을 확정 짓자 교직원들이 포함된 SNS 단체 대화방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었다며 기쁨을 함께 나눴다.

이 SNS소속된 교직원들은 너나없이 “전 국민에게 기쁨을 선사했고, 지도자로 더 역량을 발휘하는 것 같아 자랑스럽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청구고는 10일 교무회의에서 준결승 응원을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하는 한편 대회가 끝난 뒤 정 감독이 돌아오면 모교방문을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우성훈 교장은 “총 동창회와 논의해 모교 방문을 추진할 것”이라며 “정 감독이 하나의 팀으로 묶어서 이미 좋은 성적을 거뒀고 남은 경기도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현목 기자
김현목 기자 hmkim@kyongbuk.com

대구 구·군청, 교육청, 스포츠 등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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