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숙 기획자(ART89)
김경숙 기획자(ART89)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에는 ‘잠’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를 읽던 중)

‘내 생각을 외치는 것 같았소. 못 자리라! 맥베스는 잠을 죽여 버렸다’고 ‘순진한 잠, 엉클어진 실타래를 푸는 잠....’

셰익스피어는 잠을 ‘인생의 자양분’이라고 말했다.

잠이 부족하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 그만큼 잠은 생명이 살아가기 필요한 에너지를 원활하게 공급하고, 보존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날씨가 더워졌다. 이런 날에는 가끔 낮잠을 자고 싶기도 하다. 자고 일어나면 몸이 가뿐해져서 남은 하루 일정을 잘 처리할 것 같다.

몇 년 전(前) 전시 초대 드렸던 ‘정일영’ 작가의 전시회가 서울 통인화랑에서 열렸다. 관람을 하고 있는데 작가가 다가와 물어보았다.

‘이 그림들 중에 어떤 그림이 좋으십니까?’

나는 한낮의 시선이 느껴지는 언덕의 풍경 그림을 가리켰다.

‘왜 좋으신지...’

‘에너지(숨)를 품고 있는 자연이 낮잠을 자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독도 정일영 作
독도 정일영 作

그림에서 느껴지지만 ‘알 수 없는?’ 에너지를 이야기했었다. 자연의 생명들이 잠을 통해 여러 가지 기능들을 회복하기도 하는데, 그림이 생명처럼 숨을 쉰다고 생각했다.

‘분자 물리학자였다가 나중에 소설가가 된 스노(1905-1980)는 지식인 세계가 두 문화로 나뉘어 있다고 선언했다. 우주의 물리적 특성을 연구하는 과학과 인간 경험의 특성을 연구하는 인문학(문학과 예술)이었다. 양쪽 문화를 다 겪어본 스노는 이 분열이 서로 방법론이나 목표를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에릭 캔델/ 이한음 옮김

느껴지지만 말로 설명되지 않는 주관적인 경험에 대해 물리적 특성(과학)을 증명하기도 한다.

수면(낮잠을 잔 후) 방추에 대해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더욱 놀라운 점은 수면 방추 활성을 분석했더니, 100~200밀리초 마다 뇌 전체로 고동치듯이 전류 펄스가 놀라울 만치 규칙적으로 퍼져나간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 펄스는 저장 공간이 한정된 단기 저장소인 해마와 피질에 있는 훨씬 더 큰 장기 저장소(대용량 하드 디스크에 해당한다) 사이를 물결치듯이 오가고 있다’ - 매슈 워커/ 이한음 옮김

작가의 전시 제목을 보면 ‘울림’, ‘숨’, 존재의 생생함’ 등이 있다. 작품 대상의 표면 너머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림의 주제로 삼고 있다. 작업실에서 처음 작가를 만났을 때, 집, 나무, 산… 작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소소한 일상적인 풍경이라 무심하게 작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만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10분, 20분…시간이 지나는 어느 순간, 캔버스에 붙어있던 그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록도 정일영 作
소록도 정일영 作

정일영 작가 그림의 풍경들이 형태로 구분 짓는 것은 선이다. 하지만 각각의 대상들은 색들로 연결되어 소통하고, 호흡한다. 작가의 호흡에 맞춰 짧고, 긴 붓 터치 그리고 대상들에 내재된 색들은 절제되어 숨을 쉬거나, 또는 강렬한 색으로 자유로운 에너지를 표출한다. 겉으로 보아 지는 물리적 인식으로서의 자연은, 내면적으로 흐르는 호흡과 에너지로 인해 그림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자연의 생생함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작가와 자연, 작가와 화폭 사이의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그 무엇’에 대한 물음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생각하는 것, 바라보는 것… 그리고 표현하는 것에는 상당한 간격이 있다.

생각은 하늘에 닿아 있고, 손은 땅의 습성에 젖어 있다. 눈은 보이지 않는 무엇을 보는 것은 고사하고 변화하는 사물들에 허둥댄다. 간격은 좁혀질 수 있는 것일까’

숨 - 작가노트

그림이 숨을 쉴 수 있으면 한다.
자연이 멈춰있는 듯 보이지만 조용히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그림이 평면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생동감이 가득했으면 한다.
자연이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볼수록 살아있는 그 존재감을 보여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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