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원 화인의원 원장
이재원 화인의원 원장

우리나라 대기업의 불법행위가 드러날 때마다 그 처벌의 수위를 놓고 드는 의문이 과연 법이 우선일까, 경제논리가 먼저일까이다. 국민들의 솔직한 법 감정은 누구랄 거 없이 잘못을 저지른 범법자에 대해서는 형평성 있는 법 집행을 당연시한다. 하지만 정작 나오는 판결을 보면 기업들, 특히 손에 꼽히는 대기업들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만큼은 유독 관대하다. 잘못은 인정되지만 국가 경제에 미칠 영향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여태껏 국내 대기업 총수와 관련된 불법행위에 대한 법 집행 과정을 보면, 모든 경우는 아니다 하더라도 거의 대부분 이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결국 국민의 법 감정은 누그러지고, 법의 심판 역시 느슨해지는 경우를 수도 없이 봐왔다.

최근 국내 대표적인 철강업체들의 환경법규 위반행위에 대해 관련 지자체가 내린 행정조치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감독기관의 당연한 행정업무라는 의견과 업계의 현실을 무시한 탁상행정이라는 주장이 대립하는 모양새다. 지난 4월 광양제철소에 대한 전남도의 행정처분을 시작으로 충남도가 당진제철소에 대해서, 그리고 최근엔 경북도가 포항제철소에 대해 10일간 조업정지 처분을 사전예고하면서 논란은 촉발되었다. 앞서 이들 철강업체들은 용광로(고로)를 정비하고 재가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대기오염 물질을 무단으로 배출해 환경단체로부터 고발당한 바 있다.

애초 철강업체들의 환경법규 위반 사실은 내부고발에 의해 밝혀진 걸로 알려졌다. 이는 오랜 기간에 걸쳐 위법행위가 이어오지 않았나 의심케 한다는 점에서 허투루 흘릴 대목이 아니다. 내부고발에 따르면, 해당 철강업체는 고로를 정비하고 재가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을 대기오염 방지시설을 거치지 않고 안전밸브(블리더)를 열어 무단으로 배출시켰다는 것이다. 안전밸브는 고로(용광로)의 폭발 방지, 즉 ‘이상공정’의 경우에만 개방을 허가하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이들 철강업체들은 8주마다 하는 고로 ‘정비 공정’에서 조차 모든 안전밸브를 개방했다는 것이다. 고로 정비 시엔 안전밸브를 구성하고 있는 네 개의 관 중 대기오염 방지시설인 ‘세미블리더 밸브’거쳐 천천히 배출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간과 비용을 아끼기 위해 업체들이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는 게 지자체의 지적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업체 측의 경제적 손실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철강업체들의 위법행위에 대한 정확한 내용과 더불어, 해당지역 주민들에 대한 환경오염물질의 위해성에 대한 문제 제기 또한 지적하는 것이 사태의 현명한 판단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 대목이다.

지난해 국내 최대 아연 생산 업체인 영풍 석포제련소는 공장폐수 무단 방출로 경북도로부터 20일 조업정지 처분을 받은 바 있다. 이에 회사 측은 기업과 지역경제 손실을 이유로 행정처분이 과하다며 과징금으로 대체해 줄 것을 청구했지만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이를 기각했고, 현재는 조업정지 처분취소 행정소송 중에 있다. 이번에 적발된 철강업체들의 사례도 내용 면에선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업이익이 우선인 회사 측이 조업정지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주장하는 것은 이해 못 할 바 아니나 정당한 공무집행을 탁상행정으로만 몰아갈 것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유해한 환경을 만들었다면 사과를 하는 것이 우선이고 개선의 노력을 보이는 것이 마땅하다.

조업정지 처분이 최종 결정되기까지는 아직 청문 절차가 남아 있다. 여러 가지 사항들이 고려된 합리적 처분이 내려질 가능성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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