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 대표·언론인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 대표·언론인

지난 12일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지 1년이 됐다. 그동안 북·미는 제2차 하노이 정상회담까지 열고 비핵화 문제를 다루었으나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지금까지 ‘네 탓’만 반복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그동안 한반도 ‘운전자’, ‘중재자’ 역할론을 내세우며 분주하게 움직였으나 북한 측의 외면으로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북·미는 △북·미 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미군유해 발굴, 송환 등 4가지 주요 공동성명을 발표했었다. 이중 미군유해 송환만 지난해 8월 한차례 이뤄졌을 뿐 그 외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오직 2020년 대선을 겨냥해 북한 비핵화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을 의식해 미 본토를 겨냥한 미사일 발사를 중단토록 김정은 달래기에만 매달렸을 뿐 한반도의 안보를 위한 진정성 있는 비핵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트럼프가 이러는 사이 북한은 트럼프에게 친서를 보내는 등의 유화책을 쓰면서 ‘비핵화 전(前) 단계’로 핵·미사일 실험 중단과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 폐쇄를 하겠다고 발표까지 했다가 싱가포르 회담 직후엔 이행을 하는 듯한 제스처를 보이다 결국엔 원점으로 판을 뒤집었다. 지난 1년 동안 북한은 핵·미사일 고도화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오고 있는 것으로 미 국방부는 분석을 하고 있다. 반면에 싱가포르 회담 후 한국과 미국은 양국의 군사동맹을 떠받쳐온 을지프리덤 가디언(UFG), 키리졸브(KR)·독수리훈련(FE) 등 3대 한·미연합훈련을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해 버렸다. 결국은 북핵은 그대로 인 채 한미동맹 관계만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세기의 회담’이라며 세계적 관심을 모았던 북·미 정상회담이 지난 2월 하노이회담 결렬로 성과를 내지 못하자 열기가 식어버려 북·미 양국 모두 1주년 기념 행사도 갖지 않았다. 중재자, 운전자론을 내세우며 북·미를 분주히 오가며 정상회담을 가졌던 문재인 대통령도 6·12 1주년에는 북유럽 순방을 하는 등 ‘실속 없는 6·12’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한반도 비핵화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지난 11일 트럼프가 김정은이 보낸 친서를 받고 백악관 기자들에게 “김정은으로부터 아름답고 따뜻한 친서를 받았다”며 “그것은 매우 개인적이고 매우 따뜻하고 매우 멋진 편지였다”며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이 양국 간에 물밑 접촉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정은이 싱가포르 회담 1년을 맞아 트럼프에게 친서를 보내고 트럼프는 ‘김정은 편지’ 에 대한 미사여구(美辭麗句)의 표현으로 감사의 마음을 나타내는 등 표면적으로는 반기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트럼프의 미사여구의 말 속에 앞으로 비핵화에 대한 무엇이 담겨 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금 미 국무부는 비핵화 없이는 대북제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으나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 친서를 받은 후 “앞으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도 11일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전적으로 가능하며 열쇠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쥐고 있다”며 북한의 행동에 따라 대북 제재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미·중의 무역 갈등이 복병으로 떠올라 한반도 비핵화 협상의 판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그동안 북한 비핵화 문제에서 얼마간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춰온 중국이 앞으로 미국과의 무역 분쟁이 격화될 경우 종래 입장에서 돌아설 가능성도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중국은 북한에 경제 제재의 뒷문을 열어주며 북한 편에 서게 되고 미국도 한국 정부에 “확실한 동맹국 관계를 보여라”고 압박을 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미국과 북한으로부터 패싱을 당하고 있는 이 와중에 문재인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으로 한반도 문제를 풀겠다며 오매불망 김정은의 회답만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김정은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 ‘오지랖이 넓다’, ‘신뢰를 할 수 없다’는 발언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서만 일편단심 김정은 얼굴만 쳐다보는 항심(恒心) 하나로 난마처럼 얽힌 문제를 과연 풀어나갈 수 있을까. 앞길이 어둡기만 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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