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게 출렁이는 오래전 보리밭과
망초꽃 흐드러진 강둑을 달려가는
저만치 개구리교복을 입은 한 소년이 있습니다

맑은 하늘에 쓴 몇 글자의 그 순수함
종이비행기 곱게 접어 소녀에게 날려 보내고
힘차게 페달 밟으며 쑥스러움을 숨깁니다

바지자락에 스치는 풀꽃들의 붉은 입들
몽정 같은 이야기 꺼내 깔깔깔 놀려대던
회상의 저녁 풍경이 단풍 물로 번집니다




<감상> 중학교 시절 첫사랑에 대한 추억은 아직도 남아 잘 굴러가죠. 순정을 담은 편지를 그녀에게 날려 보내고 그 쑥스러움을 감추려고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았죠. 그뿐인가요. 겨우 무거운 책가방을 건네받아 자전거에 싣고 그녀의 집 대문에 가져다 놓은 일들이 숱하게 많았지만, 쑥스러워서 뒷자리에 그녀를 태운 적은 없네요. 이 부끄러움들은 바퀴와 함께 굴러가서 제 마음을 전하지 못한 채 세월처럼 흘러갔지요. 바지에 스치는 풀꽃들의 붉은 입들이 놀려댈 것 같은 추억들이 붉은 노을처럼 물들여져 오네요.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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