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

무려 다섯 번째이다. 북한 지도자가 2011년 12월 집권한 후 2018년 3월까지 중국 지도자와 만남이 없다가 갑자기 지난 1년 3개월 동안 다섯 번이나 만났다. 세 달에 한 번꼴이다. 이번 만남의 시기는 의미를 갖는다. G-20 오사카 정상회의 일주일 전에 시진핑 주석의 방북이 이루어졌다. 미·중 간의 첨예한 갈등이 전면화된 상황에서 미·중 담판에 전념해야 할 시 주석의 방북은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북한도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대내외적인 분위기 반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토록 원하던 제재 해제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북한 경제 상황의 악화는 불가피하다. 흐트러질 수 있는 북한 주민의 민심을 다잡는 동시에 미국과의 차후 협상을 위한 패를 늘리는 데 중국만큼 좋은 카드는 없다. 북·중 정상회담 때마다 중국이 제공하는 경제 지원 선물도 필요하다. 미국의 압박을 받고 있는 중국과 북한은 동병상련의 입장에서 전격적인 5차 정상회담을 개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과 북한이 매체를 통해 전달하는 내용과 수준은 다르다. 북한 공식 매체는 사실 중심의 보도를 바탕으로 ‘조중 친선 우호’를 강조했다. 비핵화 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고 향후 한반도 정세와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도 부재하다. 시진핑 주석의 방북 자체가 미국에 보내는 충분한 메시지라는 판단하에 국내 청중에 보다 집중한 모습이다. 평소 6면 발간되던 국내용 노동신문을 10면으로 증편하고 8개 면에 걸쳐 북·중 정상회담 내용을 담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중국의 관영 매체는 북한 지도자의 발언을 포함하여 비교적 자세하게 주요 내용을 보도했다. 이번 회담에 임하는 중국의 셈법이 읽히는 대목이다. 첫째, 김정은은 2차 하노이 정상회담의 결렬 책임을 미국에게 돌렸지만 대화 지속의 의지를 표명했다고 중국이 밝혔다. 북한은 “유관국(미국)의 적극적 호응을 얻지 못했”으나 “인내심을 유지”하면서 “마주 보고 서로의 관심사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이러한 보도는 미국이 듣기 원하는 소리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미국의 지속적인 대화 재게 요구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묵묵부답인 상태이므로 중국이 역할을 하여 대화 재게 가능성을 높였다는 메시지를 미국에게 전달하고 있다.

둘째, 중국은 북한의 관심과 우려를 미국이 들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매우 이례적인 시진핑 주석의 노동신문 기고문에서 중국은 “대화를 통해 조선 측의 합리적인 관심사를 해결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북·중 정상회담 모두 발언에서도 “조선의 합리적인 안전과 발전”을 언급하였다. 북한이 원하는 제재 해제와 체제 보장의 필요성을 제시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였다. 노동신문에서 시 주석은 “중국 측은 조선 동지들과 함께 지역의 항구적인 안정을 실현하기 위한 원대한 계획을 함께 작성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정상회담 모두 발언에서는 “북한 및 각 유관 당사국과 함께 적극적으로 협력해 조선반도의 비핵화 실현과 지역의 장기적인 안전을 위해 [중국이] 건설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도 했다. 중국이 앞으로 보다 적극적인 행위자로 기능하면서 북한 체제 보장 문제에 직접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정리하면 중국은 미국이 원하는 북미 대화의 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으나 동시에 북한 편을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들 수 있음을 말과 글,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챙기는 외교 사안인 북핵 문제에 대해 중국의 영향력을 과시함으로써 미·중 경쟁 전반에서 하나의 카드로 활용하는 모습이다.

5차 북·중정상회담이 향후 북미 비핵화 대화에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는 오는 G-20에서 확인될 것이다. 보다 큰 틀에서 미·중 갈등이 일시 봉합되는 ‘휴전’이 선포되면 북·중 정상이 논의했던 비핵화 대화의 재게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반면 미·중이 전혀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면 중국은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을 지원하여 북미 회담 가능성이 더 멀어질 수도 있다. 지금 한반도는 다시금 19세기 말과 냉전 시기에 경험했던 ‘강대국 정치의 귀환’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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