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환 문경지역위원회 위원.문경문협 회장
고성환 문경지역위원회 위원.문경문협 회장

글을 쓰며 먹고 사는 사람이 문경에는 한 명도 없다. 인근 시군에서도 찾아보기가 극히 드물다. 모두 벌이가 시원치 않은 생업에 바쁘다. 그러니 일과를 마치고 밤이나 새벽에 글을 쓰고, 중요한 글쓰기 모임에는 생업현장에서 이 눈치 저 눈치 보다가 억지로 시간을 내 참석하기 일쑤다.

이런 현상은 비단 이 시골만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나라에 전업으로 글만 쓰고 먹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도 시인들은 오늘도 무수히 탄생한다. 돈 안 되고, 먹고 사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시를 쓴다고 난리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참으로 대견한 일이다. 실용에 치우쳐 도덕이 무너지고,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눈뜨고 볼 수 없는 사건·사고 앞에 맑고 영롱한 눈빛으로 시심(詩心)을 품고 살겠다는 그들, 너무나 아름답고 빛나는 행동이다. 형이상학의 인문학에 들어서서 인간 삶의 궁극을 찾겠다는 그들, 국가적으로 매우 튼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나 지자체가 이 공간을 등한시하고 있는데도 홀로 맨주먹으로 들어서는 그들. 그들에게 가장 목마른 것은 내 돈 안 내고 글 한 번 발표하는 것.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원고료 한 번 받는 것. 더 욕심을 낸다면 내 돈 안 내고 책 한 권 출판하는 것이다.

좋은 글을 쓰면 사람들이 책을 사보고, 그러면 돈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출판사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책 내고 그 인세가 돌아온다는 것은 그리 수월한 현실이 아니다. 책이 얼마나 팔려야 할까? 1만 권 팔리면 될까? 우리 현실에서 책 1천 권 팔리는 것도 어려운데 1만 권? 그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우리가 낸 세금 중 일부를 돈 안 되는 문화예술분야 종사자들에게 분배 좀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좀 나누라는 것이다.

그러나 돈을 배분하는 공직자들은 아직 그 배분방법을 잘 모른다. 길 닦고, 건물 짓고, 상하수도 놓고, 공산품을 사는 일에는 배분방법을 잘 아는데,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고, 냄새도 없는 무형의 정신세계에는 어떻게 예산을 분배해야 할지 모른다. 그동안 정부나 자치단체 예산은 눈에 보이는 일에만 쓰는 것으로 길들여져 왔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예술 행사를 하는데 보조금을 받으면 임차료나 인쇄비 같은 업체와의 거래는 인정하고, 사람들에게 지급하는 출연비, 공연비, 원고료 같은 것에는 그 몫을 얼마나 배분해야 할지 잘 모른다. 분 바르고, 머리 손질하고, 공연복 사 입는 일은 보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때로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보조예산을 배분하는 것을 무슨 특혜라도 주는 양, 자기 주머니에서 꺼내 주는 양, 온갖 간섭과 자의적인 지침을 들이댈 때는 다 때려치우고 싶다. 담당하는 사람마다 다르고, 하는 일마다 다른 고무줄 잣대는 행정의 재량을 넘는 남용인데도 그걸 모른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그래놓고도 어느 개그맨에게는 2시간에 1천만 원이 넘는 강연료를 주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정부는 사업마다 지침을 주면서 시시콜콜 간섭이다. 2~3백만 원짜리 사업하나 받으면 행정전문가 하나 붙어야 그 돈을 소화할 수 있다. 거기다가 전산시스템에 등록해야만 쓸 수 있게 꽁꽁 붙들어 매고 있다. 전산에 능숙하지 않고는 정부보조금은 받을 엄두도 못 낸다.

문화예술을 그런 식으로 밖에 지원할 수 없을까? 언제까지 길 닦고, 건물 짓고, 상하수도 놓는 방식으로 예산을 배분할 작정인가? 문화예술인들이 정말로 자유롭게 상상하고, 자유롭게 기획하고, 자유롭게 역량과 끼를 펼칠 방법이 없을까?

얼마든지 있다. 아주 쉬운 데 있다. 공직자들이 의식을 바꾸면 된다. 의식을 바꾸는 일은 어렵기도 하지만 마음먹기에 달렸다. 잠시 잠깐 심호흡하고 돌아서면 된다. 문화예술인들에게 보조금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감시자, 감독자, 통제자가 아니라 지원자라고 생각을 바꾸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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