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숲에서의 기억이 하루에도 백 번 천 번 어른거린다. 나는 소망한다. 대나무를 빼곡히 심어서 처자(妻子)가 저 편에서 부르게 하리. 또 소망한다. 한쪽은 튀어 놓아 층층 누각이 구름 위로 반쯤 솟아 있게. 여름에는 흩날리는 눈발을 생각하고, 낮엔 어지러운 달빛 떠올린다네.…” 박제가의 ‘연행시(燕行詩)’의 앞 부분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가 중국을 다녀와서 쓴 문학적 향기가 느껴지는 글이다.

‘도충이용지 혹불영 연호사만물지종(道沖而用之 或不盈 淵乎似萬物之宗·도는 텅 비어 있어 그 쓰임은 어떤 경우에도 가득 차지 않는데 있다. 계곡 물을 받아들이는 호수같이 만물의 시원과 같다.)’ 노자 도덕경의 핵심 구절 ‘淵乎似萬物之宗’을 쓴 추사 김정희의 고졸한 서예 작품도 전시됐다.

산기슭 초당에 한 선비가 오뚝하게 앉아 있다. 창문을 열고 뱃놀이 하는 사람들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유유자적, 여유로운 선비의 모습을 그린 겸재 정선의 ‘계산서옥도(溪山書屋圖)’, 겸재의 부채 그림. 1732년 음력 9월 눈 앞의 풍경을 그렸다는 ‘안전소견(眼前所見)’. 잎 떨어진 나무와 마당의 국화가 계절감을 드러낸다. 국화가 시들까 걱정돼서 바람막이 발을 친 모습이 이채롭다.

조선 문예부흥기인 영조 시대를 관통해 살다 간 화가 현재 심사정의 그림도 왔다. 화폭 가득 활기찬 필치로 그린 현재의 ‘산수인물도’ 두 점과 버드나무 아래 여덟 마리의 말이 놀고 있는 팔준도(八駿圖)는 현재의 자유분방 하면서도 그침 없는 필치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여기에다 이 계절에 잘 어울리는 표암 강세황의 탐스러운 ‘묵포도도’, 관아재 조영석의 물가에 선 늙은 뽕나무와 살구나무를 통해 인생 달관의 면목을 비유해 보여 주는 ‘양주상행(兩株桑杏)’ 부채 그림, 대나무 숲을 사실적으로 그린 고암 이응노의 ‘묵죽도’ 8폭 병풍까지 왔다.

포항 포스코 본사 갤러리에는 조선 시대 문인 화가들의 경이로운 작품이 전시돼 있다. 포스코 창립 51주년, 포항시 승격 70주년을 기념해 ‘조선화인 열전-인(人), 사람의 길을 가다’ 전시회(6월26일~7월30일)가 열리고 있다. 꼭 봐야 할 전시회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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