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우 사)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
허성우 사)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

먼 훗날 기해년(己亥年) 6월의 마지막 날은 어떻게 기억될까? 분명한 것은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정전협정 66년 만에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선 최초로 북한 땅을 밟았다고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DMZ 미·북 정상회담의 사진 한 장의 상징성만 가지고 만족하기에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가 매우 절실하다. DMZ에서 미·북 정상이 만나는 것이 일회용 이벤트로 끝내기에는 매우 자존심 상하는 역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미·북 정상회담 직후 많은 외신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 DMZ이벤트는 대선용이라고 우려를 표했겠나? 물론 외교적 측면에서 빅 이벤트가 외교 난맥상을 해소하는 새로운 돌파구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한반도가 왜 미국 대선을 위한 ‘쇼장’이 되어야 하는가? 대한민국의 안위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건가? 게다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이벤트 한두 번으로 비핵화를 실천하리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미·북 협상의 관건인 비핵화 해법을 두고 양측의 간극이 여전히 크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왜 비핵화가 속도가 아니라 포괄적인 좋은 합의가 중요하다고 강조해 왔겠는가? 또한 미국은 왜 핵을 포함한 모든 대량살상무기의 폐기와 제재완화를 맞바꾸는 일괄타결식 빅딜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겠는가? 그 해답은 북한이 핵무기 보유나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한 상태에서 한반도 평화는 물론 미국의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 북한은 철 지난 영변 핵 시설 등을 폐기하면서 종전선언과 제재완화에 따른 대가를 요구하는 단계적 비핵화를 고집한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북한 역시 북한의 살 길은 핵무기 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 북한의 제1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DMZ에서 미·북 정상이 악수를 나눴다고 미·북 간의 견해 차이가 일거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것이 현실이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돌이켜 보면 북한은 지난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되자 보란 듯이 미사일을 발사했다. 어디 그뿐인가? 지난해 1차 미·북 정상회담과 9·19 남북 평양 공동선언에서 비핵화 조치로 동창리 시설을 폐기하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시설을 재가동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이러고도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우리가 원하는 비핵화를 선언한다고 믿을 수 있나?

결론적으로 북한의 셈법은 딱 두 가지밖에 없다. 첫 번째는 핵보유국 지위를 미국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미국의 비위를 적당히 맞추는 것이고 두 번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립서비스를 계속 제공함으로써 북한 체제를 공고히 하고 동시에 제재 완화를 받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미·북정상회담은 서로의 셈법에 의해서 만난 ‘깜짝 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수 있다. 우리의 우려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향후 차기 재선을 위해 DMZ에서 미·북 정상회담 그 이상의 ‘알맹이 없는 정치쇼’를 지속적으로 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대로 김정은 위원장은 그때마다 든든한 중국을 배경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필요한 ‘정치쇼’의 조연자로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실속을 차릴 것이다. 결국 미·북 ‘정치쇼’에서 승자는 북한이 될 것이며 이것이 우리가 우려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이런 우려 속에서 이제 우리는 미·북 정상들의 정치적 행위로 5100만 국민의 안위가 위협에 노출되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저지하고 우리 스스로 안보와 국익을 지킬 수 있는 역량을 제고하기 위해 새로운 한반도 전략을 세워야 할 때이다. 북한의 핵 위협이 여전히 존재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치열한 외교전 속에서 우리의 역할은 과연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냉철히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북한의 비핵화의 길이 장기전이 될 것에 대비해야 된다. 그래서 우리는 남북문제와 관련한 일회성 이벤트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말고 긴 호흡으로 냉철하게 북한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동안 대북정책은 지극히 이념화되어 진보·보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남남갈등의 뿌리 깊은 문제가 되어 왔다. 차제에 여야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정권과 이념을 초월한 지속가능한 대북정책을 새롭게 디자인한 ‘한반도 뉴플랜(New Plan)’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통 큰 결단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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