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버려진 개로서
교회당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한 적이 있다
빗줄기 사이에서 / 무언가 희게 펄럭인 걸 기억한다
발을 꺾였고 눈은 멀었는데

어찌 볼 수 있었을까

사실 나는 / 교회당 그늘에서 숨죽인
타락한 천사였다
이제는 무엇이었는지도 모를 것을
너무도 사랑하여 벌을 받았다

지상의 것

더럽고 추악했을 텐데 / 어찌 사랑했을까

개의 멀어버린 눈 속에 / 깃들어 푸르른 죄악

사랑했으니 / 인간으로 태어남이 마땅했을 것이다





<감상> 사랑하는 것도 충분히 죄가 될 수 있네요. 더럽고 추악한 지상의 것을 사랑한 죄로 혹독한 형벌을 받을 수 있다니! 처음엔 교회당 그늘에 숨죽인 타락한 천사였다지요. 천사는 한 마리 버려진 개로 다시 태어나, 다리가 꺾이고 눈이 멀었답니다. 눈먼 개의 눈동자 속엔 푸른 죄악들로 가득했답니다. 인간으로 환생하기 전의 단계가 바로 개라고 하지요. 형벌을 받은 개는 현세에서 인간으로 태어나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을 사랑할 테지요. 이런 논리라면 나도 사랑했으니 인간으로 태어났을 텐데, 전생에서 무엇을 누구를 사랑했단 말입니까.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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