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집엘 다녀왔지
지붕도 마당도 없는 집 한 채 지어놓고
붉은 기운의 식기를 닦고
녹슨 거울 속에 내리는 빗줄기를 헤아리며
기다리는 마음도 없이 그저 바라보며
돌아갈 날 손꼽아 세는 모습, 바라보다
발등에 똑, 떨어지는 빗방울에 찔려
그만, 아버지 놓치고
아버지 지우고 / 혼자 돌아왔지
불타버린 구름처럼
끝없이 쫓겨
먼 별자리를 잇듯
혼자서 돌아왔지
아무도 모르게, 모르게





<감상> 혼자 사시는 아버지의 집은 지붕도 마당도 없으니 무덤과 가깝습니다. 사는 집은 붉고 녹슬고, 아버지는 기다림도 서서히 사라지고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립니다. 떨어지는 빗방울에 찔려, 혹은 떨어지는 눈물에 찔려 아버지를 지우고 혼자 돌아 왔지요. 불타버린 구름처럼 한없이 쫓겨 혼자서 돌아 왔지요. 아버지도 혼자서 떠날 준비를 하고, 나도 혼자서 보낼 준비를 하므로 먼 별자리를 잇는 것은 쉽지 않을 겁니다. 잠시 불타다가 사라지는 것이 구름의 약점이듯, 아버지는 떠나고 나는 아무도 모르게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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