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최라라)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최영미(최라라)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영화 ‘싱글라이더’는 증권회사 지점장으로 승승장구하던 주인공이 회사가 부도를 맞으면서 연쇄적으로 잃게 되는 삶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그야말로 잘나가고 있을 때 아내와 아들을 호주로 어학연수 보낸다. 몇 년이 지나고 그들이 돌아올 무렵 회사가 위기를 맞게 되고 주인공의 삶도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와 아들을 찾아 호주로 갔지만 아내는 옆집에 사는 남자와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아내에게 자신이 왔노라는 사실을 알리지도 못하고 주위를 배회하게 되는 주인공, 남편의 전락을 알지 못하는 아내는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더욱이 평소 소극적이던 그녀가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는 강한 의지까지 보여주고 있어서 주인공은 더더욱 침울해진다. 그녀의 변화가 무엇을 목표로 두고 있는지 주인공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내를 찾아 비행기를 타는 순간부터 주인공은 이미 이승의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영화의 종반부에 접어드는 즈음 관람자는 알게 된다. 또한 주인공도 그즈음 자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아내가 자신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아직 자신이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던 때, 주인공은 아내에 대한 실망감으로 거리를 배회하다 길을 잃게 된다. 그러다 한 노인을 만나서 길을 묻는다. “아이 엠 로스트” 그런데 이 ‘로스트’라는 말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잃음으로써 잃게 되는 것과 잃음으로써 얻게 되는 것 사이, 우리의 삶은 그곳에 위태롭게 걸려 있는 것임을 알게 된다.

이제 그는 아들이 언젠가 동영상으로 보여주었던 한 섬의 해변을 찾아 떠난다. 그가 가는 길은 길의 끝이라는 표지판이 있는 곳이고 사람의 기척이라고는 없는 곳이다. 그렇게 그는 살아서 이루지 못한 꿈을 뒤늦게나마 이루려고 그곳으로 간다.

증권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주인공은 현실에서의 삶을 잃었다.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를 잃음으로 인해 가족 또한 잃었다. 이 영화에서의 잃음은 주인공을 끊임없이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그러나 결국 그 끊임없는 잃음을 통해 주인공은 삶을 온전히 내려놓을 줄 알게 되었다. 그 결과 자신이 가고자 하는 이상향으로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주인공은 잃은 것이 아니라 얻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주인공이 찾아간 곳은 아내와 아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었으며 죽음 속에서 죽지 않은 그가 살고자 꿈꾸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잃는다는 말을 두려워한다. 잃지 않으려고 밤을 새우고 잃지 않으려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때로는 사랑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행위들은 오히려 그것을 온전히 잃게 할지도 모른다. 비워야 채워진다는 말과 잃어야 얻어진다는 말은 같은 맥락을 가졌다. 무언가가 우리 손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면 그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는 일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버겁게 만드는 것인지. 여름이 되어 지난 봄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보낼 것은 보내고 잃을 것은 잃어버리자. 빈손이라야 누군가와 악수할 수 있고 빈 들판이라야 꽃이 오고 열매가 온다. 주인공이 가족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을 때 추억의 자리가 찾아오고 가족이 온전히 자신의 영혼 속으로 스미었다. 그러니까 다른 무엇인가를 원한다면 지금 내 손을 비워놓는 일부터 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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