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문득
나를 잊고 싶을 때가 있다
급행열차 선반에 얹어놓고
꾸벅꾸벅 졸며 가다가
그만 깜박 잊고 내리듯
나를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어떤 날은 또
나를 살살 유인해
어느 으슥한 술집으로 끌고 가
진탕 술이나 먹이면서
주정하듯 함부로 지끌이는 불평과
입 밖에 낸 적이 없던 저주까지도
곰곰 새겨듣고 싶을 때가 있다

말이 말을 구속하거나
재떨이 같은 세상에
꽃씨 부리듯 시를 쓰고 있음을
자각할 때는.




<감상> 정석대로 사는 사람도 문득 나를 잊고 권태에 빠지고 싶을 때가 많다. 자꾸 되묻다 보면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문득(問得)’이다. 물건처럼 급행열차 선반에 나를 얹어두고 싶을 때, 술을 진탕 먹여 불평을 함부로 지껄이거나 저주까지 새겨듣고 싶을 때, 바다를 향해 마음껏 불만을 소리 지르고 싶을 때, 이때가 권태에 빠지고 이탈하고 싶을 때다. 하지만 세상은 자신이 내뱉은 말을 구속하고, 한 빛깔을 요구하는 재떨이 같다. 이런 세상에 시인은 꽃씨 부리듯 시를 쓰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으므로 권태에 빠져야만 하는가, 빠질 수 없는 것인가.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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