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화철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

손화철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

사지선다 혹은 오지선다의 소위 객관식 문제를 푸는 데 집중하는 교육 때문에 우리나라 학생들의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식의 교육을 받고 시험을 치른 세대가 은퇴할 나이에 이르렀는데 그동안 경제도 충분히 부흥했고 신산업도 많이 생겨났으며 참으로 창의적인 사기 사건들이 오늘도 쉼 없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 문제만 더 맞았더라면” 하는 비교의식과 열패감을 심어주는 다소 잔인한 평가방식이 도무지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과 근성을 키웠는지도 모른다.

객관식 문제를 풀어 경쟁하는 교육의 진짜 폐해는 결과에만 집착하는 태도를 강화한 데 있다. 객관식 문제를 맞고 틀리는 것은 실력에 따르기도 하지만 운에 따르기도 한다. 알아도 표기를 잘못하면 틀리는 것이고 몰라도 우연히 맞는 번호에 동그라미를 치면 점수를 받는다. 극심한 경쟁 상황을 상정하면, 내용을 정확히 아는 것보다 정답을 맞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엉뚱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배운 것을 제대로 알기 위해 시험을 치르는 것이지만, 경쟁도구로 시험을 이용하다 보니 정작 앎은 뒷전이고 정답 찾기가 우선이 되었다. 정답만 고르면 되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는 대신 부정행위, 시험지 유출, 고액과외에 매달려도 상관없다. 공부를 잘해야 성적이 좋은 것이 아니고 성적이 좋으면 공부를 잘하는 것이다.

이런 왜곡된 인식이 학교 밖에서 횡횡하는 결과에 대한 집착을 다시 강화시킨다. 고속성장의 과정에서 결과만을 중시하는 태도는 불가피했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여기에 어릴 때부터 단련한 객관식 문제 풀이까지 더해져서 고착화된 것이다. 그리하여 원하는 결과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서운 태도가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버렸다. “그땐 누구나 다 그랬고, 결국 이렇게 다 잘 되지 않았느냐”는 과거에 대한 비열한 합리화는 덤이다.

결과를 중시하는 태도는 부정의에 대한 무감각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일 뿐 아니라 남에 대해서도 결과를 핑계로 과정을 용서한다. 결과가 좋았다는 이유로 재벌과 친일과 독재를 변호하고 자신이 주장하는 진리와 이념을 강화할 수 있다면 가짜뉴스의 유포도 서슴지 않는다. 교수인 부모가 자기 학교의 학생인 자식에게 높은 성적을 주고 사회고위층은 대기업에 자식의 취업을 청탁한다.

객관식 시험에서 우연히 정답을 맞힌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듯이 일확천금의 기회를 꿈꾸는 것도 같은 뿌리를 가진다. 과도한 차액을 노리는 부동산 투자나 고위험 증권 투자, 비트코인 열풍 같은 것들이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광범위하게 퍼진 것은 결과 집착의 부작용이다.

단기적인 결과에만 집착하다 보니 부정하게 얻어진 결과가 초래하는 부작용도 간단하게 무시해 버린다. 소수의 기득권자가 누리는 특혜에 눈 감고 그들의 갑질을 용인해서 사회 전체가 겪는 고통은 심각하게 고려되지 않는다. 시험지를 훔치고 청탁을 해서 합격과 취업을 한들 온전한 사회생활을 할 리가 없지만, 거기까지 굳이 생각하려 하지도 않는다.

어떻게 이런 왜곡된 태도를 벗어 버릴 수 있을까? 객관식 문제풀이를 없애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참 좋으련만, 우리 안에 켜켜이 쌓여 그야말로 적폐가 되어 버린 오랜 사고방식을 하루아침에 없앨 묘수는 없다. 성공하지 못해도 노력한 이를 격려하고 결과가 좋아도 과정이 잘못되었으면 과감히 배척하는 세상은 참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결과 집착의 문화가 초래할 궁극의 결과는 모두의 지옥일 거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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