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바와 오렌지 하나
아니 오렌지와 오렌지 푸딩

음력으로 치자면 / 오늘은 0으로 끝나는
손 없는 날이어서 / 푸딩으로 할 거야

오래 씹던 껌처럼 보드랍고
천천히 끈적거리고 싶은 푸딩과
깔깔깔 웃으며 신나는 오후를 보내야지

푸딩의 오른쪽에서 봄꽃이 지는 자리로
마음 깊숙한 곳에서 더욱 안쪽으로
무슨 일을 하여도 탈이 없으니

별들의 방향이 어떤 별자리를 이루는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으니
방울방울 푸딩을 시작할 거야

푸딩에서 오렌지를 / 오렌지에서 사라진 오렌지를
오렌지에서 지탱하는 푸딩을 / 온종일 실컷 이해할 거야





<감상> 오렌지 푸딩을 만들려면 오렌지와 젤라틴이 있어야 하죠. 삶과 사랑에도 슬픔과 웃음이 있기 마련이죠. 이 시에서 푸딩 대신에 슬픔이라 바꾸어 놓고 읽어 보면 좀 더 쉽게 다가와요. 슬프면 슬픈 대로 몸을 맡기면 무슨 일을 하여도 탈이 없을 것 같네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인 별의 방향에는 별 관심이 일어나지 않아요. 방울방울 슬픔을 수용하고 온종일 실컷 즐겁게 견디는 일을 시작해 보세요. 결국 오렌지에서 지탱하는 푸딩처럼, 슬픔도 사랑의 한 갈래이고 사랑을 견디는 힘이 된다는 걸 이해할 수 있어요.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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