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서 청송문화관광해설사
최인서 청송문화관광해설사

나는 너에게 기능이 많거나 외관이 화려한 비싼 유모차를 사주진 못했다. 그 시절에는 엄마가 포대기로 양 어깨에 메어 다니거나 유모차가 있긴 하였지만, 선택의 기준은 얼마나 든든한가가 일 순위였다.

“지인이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야무지게 포대기를 엮어 메어 아기를 업고 다니느냐? 모유를 먹인다고요?”라는 흥미로운 사람들의 시선이 나쁘지 않았다. 나는 늘 지인이를 나의 인형처럼 사람들에게 자랑 시키기를 즐기는 엄마였다. 시간은 어찌나 빠르게 지나가는지. 따스한 사랑이 충만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25년이 훌쩍 지난 우리의 지금이라니.

유모차에 너를 태우고 논과 밭길을 왔다 갔다 무수히 많은 말들로 너를 잠들게 했지. 그 새까만 눈동자와 도톰한 입술, 오동통한 너의 그 얼굴은 아마 내가 이 세상을 기억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내 속에서 아기를 만들고, 살을 찢어 내어놓고 보니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로 나에게 보내어 진 숙제 같은 책임감이 느껴졌다. 나는 또한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배울 수 없는 인간의 거룩한 사랑을 너로 인해 뜨겁게 느낄 수 있었다.

제법 말을 할 수 있을 때쯤, 그날도 같은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유모차 부대가 해 저녁 논길을 거닐게 됐다. 아이들도 그 풍경이 익숙한지 “벼가 익어가네요. 무거워서 고개를 숙였네요. 벼알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네요”등 제법 언어적 표현이 가능해져 갔다. 나는 꽃 같고, 별 같은 말을 가까이 해서 호기심과 꿈이 많은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아이가 차츰 더 많은 말들을 이해할 쯤 자연에 관한 책 한 권을 유모차에 넣어 다니며 제비꽃, 민들레, 씀바귀, 토끼풀 등등 하루가 다르게 자연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갔다.

38개월 되던 달. 드디어 책을 수천 권 이미 읽어 주며 구연동화 하듯이 ‘누가 잘못했고, 잘했고, 누구 생각이 더 현명하거나 지혜로웠다’는 책에서 전하는 내용까지 토론이 가능하게 됐다. 이때 쯤 아이는 자음 모음 하나 가르치지 않았는데 통문장의 글을 척척 읽어 가는 것 아닌가. 몇 번이고 나의 귀와 눈을 의심했지만 이미 동화책 정도는 술술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아이가 되어있었다. 그 후 아이는 글씨도 구구단도 이해력 높게 스펀지처럼 잘 흡수해서 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낳은 아이가 천재예요”라고 속삭이고 싶었다.

비가 내린 어느 날 우산을 씌워 가는데 아이는 시인이 되어있었다. “엄마, 왜 울어?” “내가?, 안 우는데” “아니, 논도 풀도 다 울고 있잖아, 비가 슬픈 말을 했나봐!” 순간 나의 마음에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일어 유모차의 아이 얼굴을 빠꼼히 바라다보는데 가슴이 울컥했다. 지인이는 이렇게 잘 자라 주었다. 우리의 애틋한 사랑은 유모차를 밀며 들려 주었던 노래와 자연풍경 속에서 들려주었던 많은 이야기들이 영글게 해 주었다.

“엄마, 나 유모차 예약했어” “그래, 벌써” “응” “요즘은 예약해야 되나 봐” “당연하지” 딸 지인이가 아기를 잉태하여 벌써 6개월 차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는 과정을 누구보다 차분하게 잘 맞이하고 있어서 고맙다. 할 수만 있다면 큰 유모차에 나의 딸을 태워 여자에서 엄마가 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햇살을 가릴 수 있고, 안전하게 바퀴가 휙휙 돌아가는 조금은 더 비싼 제품을 사서 예비 엄마가 된 딸을 이 어미가 호사스럽게 태워 온 동네를 돌며 끌어주고 싶다.

미래 외손주야! 외할머니가 태워서 끌어주었던 유모차에는 학습백과사전과 시인이 타고 있었는데 네 엄마는 과연 너를 어떤 세상으로 데리고 다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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