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흔해 빠진 나는
내 이름이 누군가에 의해 불릴 때마다
부끄러웠다 곁에 함께한 봄 느릅나무
여린 잎사귀도 움츠리곤 했다
흔해 빠진 나는 어디에서나 불편했고
달이 떠오를 때마다 우물 속으로
몰래 숨어들곤 했다
끝내 흔해 빠진 나의 부끄러움은
온전하게 내 몫이었고, 단풍이 들기에 먼저
온 마음이 붉게 물들었다 / 온통 충혈되었다

주변이 아름답지 못했다
아비의 얼굴이 / 어미의 입성이
처마에 내걸린 문패가 바람 없어도 삐뚤었다
긴 얼굴을 파묻는 어둠이 언제나 고마웠다
끝내 어둠만이 내 편이었고 위로였다
단단하게 문을 닫고 고여있는 어둠만이
혼자서도 넉넉히 감당할 수 있었다
그 안에서 혼자만의 쪽꿈 꿀 수 있었다





<감상> 얼마나 부끄러우면 여린 잎사귀 움츠리듯, 우물 속에 숨듯, 단풍보다 먼저 물들듯 합니까. 윤동주 시인처럼 부끄러움에서 출발하고 성찰하는 시인의 마음은 참 고요합니다. 문단의 중앙에서, 아니 지역에서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으면 안하무인(眼下無人)인데, 시인의 마음은 너무나 순수합니다. 주변이 아름답지 못하고, 가정환경이 불우하니 이름이 새겨진 문패마저 삐뚤어져 있습니다. 어둠만이 자기편이고 위로가 되며,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이라니! 어둠은 어김없이 오고 남을 속이지 않으므로 친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둠 후에 파랑이 몰려오는 새벽이 오듯, 자신의 쪽꿈이 실현되길 빌어봅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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