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무 대구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
최상무 대구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

‘연출(directing)’이라는 용어는 서구적 개념의 연극이 동양에 들어올 때 일본에서 번역되어 창안된 조어이다. 연출이 독립된 하나의 직업으로서, 사회적으로 공인된 것은 서구에서도 19세기 중엽에 이르러서였다. 무대예술 혹은 제전(祭典)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나의 표현을 만들어 낼 때 그들의 표현에 통일성을 주는 작업이 연출이다.

‘연출자(Director)’는 극작가가 쓴 대본을 가시화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무대에서는 연출가이고 영화에서는 영화감독, TV프로그램에 서는 PD들이 연출자라고 할 수 있다. 연출자에 의해 그림의 배열이 결정되고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에 대한 몰입도가 달라지며 같은 작품이 전혀 다르게 표현될 수도 있다. 연출자의 성향과 능력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가 큰 차이를 보이기에 필자와 같은 예술감독들에게는 매 작품 연출자를 선택하는 일이 작품을 선택한 다음 가장 중요한 작업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BC 5세기 그리스의 연극에도 디다스칼로스(didascalos)라는 일종의 연출자가 있었고, 중세 유럽의 종교극에도 ‘극의 리더’가 있어서 오늘날의 연출자와 비슷한 역할을 맡았다.(두산백과)

이후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기의 유행한 오페라에는 창작자인 작곡가가 음악뿐 아니라 연출 부분에도 많은 관여를 하였다. 규모가 큰 오페라나 제전, 축전과 같은 경우에는 창작자나 축전 담당자가 연출을 맡고는 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마당놀이 혹은 탈춤이나 꼭두각시놀음과 유사한 유럽의 거리 극단 혹은 소극장 소속 극단의 경우에는 극단의 단장이 연출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

17·18세기 동안 유럽에서 유행처럼 오페라극장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19세기에 들어와서 과학의 발전과 함께 무대기술이나 무대장비, 조명기술 등이 발달하면서 이 모든 것을 무대 위에서 구현 할 수 있는 기술자가 필요하게 되면서 연출자는 전문 직업인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오페라 연출자는 오페라의 발상지인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관객들이 많이 찾는 오페라들이 롯시니, 도니제티, 베르디, 푸치니와 같은 이탈리아 작곡가들의 오페라가 많고 대부분의 오페라 대본이 이탈리아어로 쓰여진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이탈리아보다는 독일을 중심으로 한 독일어권에서 유명한 오페라 연출자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오페라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의 연출자들은 그들의 전통 오페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고전을 잘 재연하는 것이 장점이다. 반면 독일의 연출자들은 고전적 사실주의뿐 아니라 자유주의 성향을 가지고 다양한 실험적 무대를 선보이면서 모던하고 현대적인 연출을 만들어 내는 것이 장점이다.

이처럼 고전을 고수하면서 잘 재연하는 방식과 현대적으로 극의 재해석을 잘 해내는 방식 모두 장점이면서 단점이기도 하다. 같은 오페라가 어디에서 공연되어지는가에 따라서 그 지역과 장소의 특성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무대 연출을 만들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유럽에서 성공한 공연이라고 무조건 아시아 시장에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공연이 이루어지는 곳의 트렌드를 분석하고 관객의 입장에서 원작을 손상시키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작품을 잘 만들어내야 한다고 본다.

대한민국에는 세계 시장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실력 있는 많은 예술가들이 존재한다. 특히 오페라와 관련해서는 성악가, 지휘자, 오케스트라 연주자 등 뛰어난 예술가들이 많이 있다. 그들에 비해 조금은 부족한 부분이 무대 관련 연출자와 무대 미술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유럽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와도 이곳에서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많지 않다는 것과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합예술인 오페라의 고른 발전을 위해 예술적, 창의적, 논리적인 능력이 탁월한 훌륭한 연출자가 대한민국에 많이 등장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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