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따라나섰던 언덕 위의 그 집은
숨 찬 몇 개의 골목과 비탈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골목은 술래마냥 번번이 길을 숨겨서
밤눈 어두운 너는
허둥거리며 진땀에 푹 젖고는 했는데
매번 오르면서도
일찍 내린 정류장은 알지 못했다.

낮눈마저 어두워진 너는
처마 바로 끝에 매달린 정류장을
그대를 잃고 그 집마저
잊은 뒤에서야 알았다.




<감상> 무작정 따라나섰던 언덕위의 그 집, 그대에게 눈먼 시인은 매번 길을 잃는 길치가 되고 맙니다. 몇 개의 골목과 비탈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골목은 술래마냥 길을 숨기기 일쑤입니다. 진땀에 젖고 매번 오르면서 자신이 내린 정류장마저 잊어버렸습니다. 눈먼 숭어처럼 방향감각을 상실한 이는 그대를 잃고 그 집마저 잊은 뒤에야 눈이 확 떠집니다. 처마 바로 끝에, 코끝에 정류장이 매달려 있었고 지척에 그대가 있었다는 것을. 차라리 눈이 멀고 길치가 되고 말 것을, 그대는 소식 없이 왜 그 집을 떠났을까요.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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