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궁궐을 지어 안락을 누리고 있는 제나라 선왕을 만난 맹자가 충고했다. “뱃놀이에 취해 강물을 따라 내려갔다 되돌아올 줄 모르면 ‘유(流)’라 하고, 물결을 거슬러 올라갔다 되돌아올 줄 모르면 ‘연(連)’이라합니다. 사냥에 나갔다가 짐승을 쫓는데 취해 그칠 줄 모르면 ‘황(荒)’이라 하며, 술잔치에 취해 음주를 그치지 않는 것을 ‘망(亡)’이라 합니다. 맹자의 ‘유연황망(流連荒亡)’은 지도자는 자신의 아집과 안락보다 백성의 마음과 고충을 먼저 헤아려야 한다는 충고였다.

기원전 고대 앗시리아 제국에는 왕이 매 맞는 풍습이 있었다. 오리엔트 세계 대제국을 건설한 앗시리아 왕들은 ‘대왕’으로 불렸다. 하지만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이들 왕들은 매년 ‘신년제’라는 종교적 행사가 열릴 때 마다 두들겨 맞는 종교의식을 치렀다. 태양신을 모신 에시길라신전에서 거행되는 신년제가 시작되면 왕은 신관에게 왕권을 상징하는 검과 지팡이를 반납했다. 왕권의 상징을 거둬들인 신관은 왕의 따귀를 때리고, 귀를 잡아 끌어 엎드리게 했다.

엎드린 왕은 자신이 “신을 잘 섬기는 하인이며, 백성들을 잘 보호하겠다”고 맹세했다. 신관은 신을 대신해서 왕권을 다시 인정해 주는 절차를 밟았다. “그대의 권력을 강하게 해주고 영원히 그대를 축복할 것이며, 그대의 적을 분쇄해주겠노라”고 한 뒤 왕이 반납한 검과 지팡이를 되돌려 주었다. 매년 왕이 매를 맞는 의식을 행한 것은 왕이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행사였다. 이러한 의식은 왕이 신의 하인이라는 국민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왕이 매 맞는 의식은 왕의 교만을 경계하는 측면도 있었지만 왕권은 일시적인 모욕을 통해 더 공고해졌다. 왕에 대한 백성들의 신뢰가 한층 굳어졌기 때문이다.

미국 하원이 유색인종 야당 여성의원에게 “너의 나라로 돌아가라”며 인종차별 발언을 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규탄 결의안을 채택, 화제가 됐다. 미 의회가 대통령을 입으로 매질하는 규탄 결의안은 107년 만의 일로, 고대 앗시리아의 매 맞는 왕을 연상시킨다. 나라를 열강들의 동네 북으로 추락시킨 4강 외교 실책은 국민의 매질로 징비해야 할 외교 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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